설욕전?!

어? 딸아이네 차가 우리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시티로 가족나들이를 나갔다 오는 길이라 했습니다. 뒷좌석의 에이든과 에밀리도 엄마 아빠와의 시간이 좋았던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아내와 저를 향한 애교를 무한발사 하고 있는 에밀리는 물론, 미소천사 에이든도 입이 함박만해졌습니다. 엄마 아빠와의 행복한 외출에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덤으로(?) 만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겠습니다.

한껏 들뜬 얼굴의 녀석은 카시트 안전벨트를 톡톡 치며 “하지, 하지! 눌러, 눌러! 에이든 내릴 거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대략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낚시장비를 싣고 막 집을 나서려던 순간에 녀석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았으면야 무조건 계획취소, 녀석들과 시간을 함께 했을 테지만 지난주 토요일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설욕전(?)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터인지라 아내와 저는 처음으로 그렇게 아이들을 뿌리쳤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의 재미있는 시간을 기대했던 에이든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어쩐 일인지 그날은 에밀리까지 울음에 합류했습니다. 돌아나가는 차에서는 두 녀석의 대성통곡이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렸고 아내와 저는 조금 아니, 많이많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낚시터로 향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전날에도 낚시를 갔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시간, 막히는 길을 뚫고 한 시간여 만에 낚시터에 도착했는데 낚싯대를 던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강풍이 몰려오더니 멀리서는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천둥번개와 소나기가 우리한테까지 오는 데에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랴부랴 낚시를 접었습니다. 녀석들의 입질이 막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던 터라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에이 찝찝해. 우리, 내일 다시 와서 설욕전 하자!” 돌아오는 차에서 우리는 그렇게 굳은 결의(?)를 다졌던 겁니다.

그 놈의 물고기가 뭐라고… 귀한 내 새끼들까지 뒤로 하고 낚시터로 가는 길… 딸아이가 두 녀석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다행이 에이든과 에밀리는 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두 녀석 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밝은 모습으로….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울음 끝이 길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원래 낚시라는 게 못 잡아도 좋고 잡으면 더 좋은 거지만 그날만큼은 꼭 잡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습니다. 애초에 설욕전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의 달콤한 시간까지 외면하고 간 낚시였기 때문에 더더욱 전투(?)의지가 불타올랐던 겁니다.

다행이 전날과는 달리 물도 이른바 ‘장판’을 이루고 있었고 바람도 없었습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해가 그림처럼 다가오면서 15분쯤이 지나자 녀석들의 입질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아빠진 녀석들은 미끼를 끼우기도 바쁠 정도로 잽싸게 먹이만 먹고 도망을 치곤 했습니다.

잠시 그렇게 녀석들의 식량보급(?)에 정신이 없던 차에 아내가 엄청 크고 뚱뚱한 장어 한 마리를 들어 올렸습니다.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저는 녀석들의 계속되는 도전에 바쁘게 대응하며 세 시간 반 동안 열 마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아내나 저나 평소에는 남들한테 이것저것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어지간한 건 욕심내지 않고 살지만 한번 오기(?)가 발동하면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의 오기와 행운이 맞아떨어져 이른바 ‘대박’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만난 에이든과 에밀리… 눈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두 녀석과의 시간은 언제나 행복 그 자체입니다. 설욕전 같은 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크기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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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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