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서울로 시집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네 집에 모처럼 친정엄마가 다니러 왔습니다. 두 사돈은 처음에는 반갑게 얼싸 안았지만 며칠 동안 한 집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불편한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난 시간, 창 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고 있던 시어머니가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아이고! 사돈, 이제 그만 댁으로 가시라고 가랑비가 가랑가랑 내리네요.”

이에 질세라 친정엄마가 얼른 맞받아쳤습니다. “어머! 사돈, 무슨 말씀이세요? 저더러 오래오래 있다 가라고 이슬비가 이슬이슬 내리는 걸요. 안 그런가 최 서방?”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고전 개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것은 반드시 옳고 또 어떤 것은 확실히 그르다’는 절대원칙은 없는 듯싶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처해진 입장에 따라 진실이 거짓이 되기도 하고 그름이 옳음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실게임’이라는 게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본인들이 이전에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상대를 향해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한국 정치판 그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어쩌면 저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봐도 지탄 받을만한 나쁜 짓을 해놓고도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이 오리발을 내미는 지도층 인사들이나 가진 자들을 볼 때도 화를 참기가 어려워집니다. 시장질서를 깡그리 망가뜨리고 짓밟아놓고도 ‘내가 뭘?’ 하는 태도를 보이는 몰염치한 사람들에게서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긴 듯싶습니다. 절기상으로는 엄연히 봄이 됐음에도 심술궂은 겨울은 아직도 변덕과 심통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에 비까지 찔끔 대니 기분까지 꿀꿀해집니다. 이왕 올 비라면 가뭄을 해소할 정도까지는 시원하게 와줬으면 차라리 좋을 텐데 말입니다.

지난주에는 실로 오랜만에 잔디를 깎았습니다. 가뭄 탓인지 세 달도 넘게 방치해뒀음에도 그리 길지 않은 상태였지만 기분전환도 할 겸 앞마당과 뒷마당 잔디를 모두 깎아냈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잔디를 깎고 난 후에 싱그럽게 올라오는 풀 냄새는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한 주 한 주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내다 보니 무관심으로 대했던 우리 집 복숭아나무에는 분홍색 꽃들이 예쁘게 피어났고 비파나무에는 어느새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노랗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텃밭 여기저기에도 상추, 갓, 알타리, 복초이 등을 비롯한 우리 집 ‘푸름이’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우리 집 뒷마당을 온통 보라색 천국으로 만들어줄 자카란다도 꽃 피울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연의 이치, 계절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존재할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만 새봄과 함께 좋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지금 ‘또 하나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4시간 지 엄마한테만 매달려 우리한테 조차도 곁을 안 내주던 우리 집 ‘까칠공주’ 에밀리, 봄이가 새봄을 맞아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눈만 마주쳐도 대성통곡을 하던 이 녀석이 얼마 전부터 우리를 보고 생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제 얼굴을 만지며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미소천사 에이든, 훈이가 안겨주고 있는 넘치는 행복에 이 녀석까지 합세해 우리의 봄은 더더욱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을 그려낼 것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봄, 이제부터는 기쁘고 고맙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가득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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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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