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는데…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제법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곤 합니다. 이곳에도 꽃샘추위라는 게 있는 건지 요 며칠 동안은 간간이 비도 뿌리고 바람도 심술궂게 불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집 뒷마당 처마 끝에 달려 있는 풍경(?) 모빌(?) 소리로 바람의 정도를 짐작하게 되는데 이스트우드로 이사오면서 구입한 이 제품은 유난히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항상 우리의 기분을 맑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며 시달리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카란다에서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데크를 어질러놓는 것도 센바람이 주는 작은 불편입니다. 뭐든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적절하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 헷갈리는(?) 날씨가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확 더워지는 게 또한 호주의 날씨이기도 합니다. 연초부터 코로나19에 쫓겨(?)다니다 보니 어느새 8월도 막바지, 겨울의 끝자락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우리 집 앞마당 화단에서 여남은 송이씩 무리를 지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황색, 노란색, 보라색 꽃들을 보며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습니다. 봄이 오고 있는 겁니다.

우리 극성부부의 봄맞이 준비도 요 며칠 새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뒷마당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비파, 무화과, 뽕, 감, 배, 포도, 귤, 블루베리 등 과실수들을 깨끗하게 이발(?)시켜줌은 물론, 텃밭의 한국부추, 치커리, 뉴질랜드시금치, 머위, 방풍, 갓, 상추, 고수, 대파, 방울토마토 등도 잘 자랄 수 있게 흙도 갈아엎고 거름도 주고 주변 잡초들도 깨끗이 정리해줬습니다.

내친 김에 사다리를 쭉 펴서 앞집, 옆집 그리고 우리 집 나무에서 날아든 잎사귀들이 여기저기를 메우고 있는 가터 (Gutter) 청소도 지붕을 뺑 돌아가며 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2, 30대인데 높은 사다리 위가 편치만은 않은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행여 찌질한 남편이 떨어지기라도 할세라 밑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사다리를 꽉 붙들고 있는 아내에게서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힘은 들어도 이렇게 아내와 제가 부지런 혹은 극성을 떨어대는 덕에 우리 집은 늘 예쁘고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고 향 짙은 커피 한잔을 들고 양탄자처럼 폭신한 잔디를 바라보는데 그 위에서 신나게 뛰놀던 에이든과 에밀리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기분이 한껏 좋아집니다.

햇살이 좋던 며칠 전에는 그 동안의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아침 밥을 먹고는 선배지인 부부와 함께 의기투합, 문득 낚싯대를 싣고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람이 너무 세서 낚시하기엔 안 좋은 날씨였지만 운 좋게 몬스터급 장어 한 마리씩을 챙겼고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문득 카타이 국립공원 (Cattai National Park)엘 들렀습니다.

썬루프를 완전히 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우리는 더 없는 힐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넓고 한적한 국립공원에서 무리를 지어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던 캥거루 수십 마리가 우리를 보고 흠칫 놀랍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주머니 속에 아기캥거루를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많았습니다. 아기주머니에 들어있는 녀석들도 엄마와 함께 풀을 뜯어먹고 있었고 조금 큰 녀석들은 엄마 옆에 서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얼른 주머니 속으로 뛰어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쟤네들, 오랜만에 애들이랑 여고동창회 하나 봐!”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깔깔댔습니다.

우리가 사는 계절은 이렇게 따뜻한 봄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끈질긴 코로나19는 물러갈 생각은커녕 오히려 기세가 더 등등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호주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일촉즉발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애써 잡아놓은 코로나19를 몰지각한 사람들과 개념 없는 집단들이 다 헤집어놓는 걸 보면 안타까움과 분노가 느껴집니다. 친일잔재 청산도 산 넘어 산인데 광복절에 미국 국기와 일본 국기 거기에 아베 일본총리 사진까지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그런 사람들 때문에 봄은 와도 우리의 진정한 봄은 늘 오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B형 간염 ②
Next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48강 나는 계속 아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