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도 보여요! “부장님, 저 안상태 기잡니다. 지금 막 여의도에서 취재가 끝났습니다. 이 시간 이후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여기서 바로 퇴근할까 하는데요…” 퇴근시간에 임박해 여의도에서
일이 끝났고, 집은 마포입니다. 이럴 때 굳이 강남에 있는
회사까지 들어왔다가 퇴근하는 일은 정말 바보짓입니다. 그날 마감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위의 방법이 당연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이런 저런 취재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저녁 늦게야 일이 끝날 것 같던 윤종신 기자가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어? 종신씨, 빨리 끝났네요? 오늘 늦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아직 두 개의 일정이 더 남아 있고, 진행하던 일도 허겁지겁 정리하고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억에 없는데 4시까지 돌아온다고 저한테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임 데스크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무슨 일로 만나고 있는지 한 시간 단위로 보고할
것과 약속한 시각에 정확히 돌아올 것을 강요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기자들한테 와서 지금
쓰고 있는 게 무슨 기사인지, 얼마나 진행됐는지 등 일일이 간섭을 하곤 했답니다. 반면 ‘제대로 된 기사를 데드라인에 맞춰 내기만 하라”는 원칙을 던져놓고
거의 ‘방목’ 하다시피 기자들을 다루는 저에게서 그들은 극과
극의 차이를 느꼈을 것입니다. 영업사원들에게 매일매일 리포트를
쓰게 하고는 전화를 걸어 “한국물산이죠? 어제 우리 김구라 과장이 귀사를 방문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라고
일일이 확인하는 영업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이 방문했다고 적어낸
거래처는 물론, 전화로 영업상담을 했다는 회사에까지도 전화를 해 꼬치꼬치 묻곤 했습니다. 직원들을 못 믿어서 그랬겠지만 거래처들에 어떤 인상을 줬을지 많이 걱정스럽습니다. 사실 저도 가끔은 윗사람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정말 일하기 싫은 날은 엉터리(?) 취재일정을
대고 땡땡이를 친 적도 있었고, 이른 오후부터 동료들과 술판을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의 철칙 ‘어떤 경우에든 일에 지장은 주지 않는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거짓말도 보여요!’ 한국에서
유행한 명 카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절대 알 수 없는
완벽한 거짓말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거짓말은 어슷비슷하게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참 희한한 것은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아랫사람들의 거짓말이 점점 더 잘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일 때문에 그런 건지 약간의 과장과
거짓말이 들어 있는지가 거의 다 보입니다. 아마도 오랜 기간 동안의 현장 경험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능력이리라 보여집니다. 하지만 아랫사람의 거짓말이
의심된다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건 윗사람으로서 옳은 처신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도가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속아주는 아량’은 좋은 윗사람의 필수덕목입니다. 반면, 윗사람을 적당히 속이면서도 자신의 일에는 절대 지장을 주지 않은 것 또한 아랫사람으로서의 필수덕목입니다. 업무에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지나친 요령을 피우는 경우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믿는 가운데 살짝살짝
속이고 속아주는 조직, 사람 사는 냄새도 나면서도 늘 건강하고 편안한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