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어느 술고래(?)의 굴욕 #4512022-07-23 16:02

어느 술고래(?)의 굴욕

 

, 이러면 안 되는데…” 몇 번이고 일어서 봤지만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뭐라도 붙들고 버티고 싶었지만 매서운 찬바람만 불어올 뿐 주위에는 아무 것도 잡을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씨름을(?) 계속하다가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눈을 떠보니 회사 숙직실이었습니다.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내와 처고모부, 그리고 수위아저씨 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9911월 말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살을 에는 듯한 겨울추위가 엄습해왔고, 전날엔 폭설까지 내려 사방천지가 얼음판이었습니다. “오늘 차 놔두고 갈 게. 저녁에 회식 있어.” “,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조심하구…” 자칫 그게 아내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뻔 했습니다.

 

회사 근처의 한 일식집에서 광고국 사람들과 우리부서 기자들이 모여 김태선 차장 환영식을 가졌습니다. 여성지 <여원>으로 자리를 옮겨간 지 한 달쯤 된 시점이었습니다.

 

그 자리의 주인공이 저인데다가 그 친구 술 엄청 쎄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라 술잔이 쉴새 없이 날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따라 하루 종일 바빠서 점심도 굶고 뛰어다닌 저는 사실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술자리는 기분 좋게 진행됐습니다. 술잔이 거침 없이 돌며 거듭되는 원샷!’에 모두들 많은 술을 마셨고 분위기도 한껏 고조됐습니다. “, 이제 우리 2차 갑시다.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나이트입니다. 그나저나 김 차장님은 그렇게 술을 들이붓고도 멀쩡하세요? 얼굴색 하나 안 변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저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한 표시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이미 충분히 지치고 취해 있었습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갈 생각에 화장실에 들렀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모두들 취한 상태라 너도나도 2차를 향해 떠났고, 뒤늦게 나온 저는 바깥의 찬 공기를 만나며 갑자기 술이 확 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식집을 나와 조금 걷다가 그 꼴을 당한 겁니다. 밤 늦은 시각이었고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얼음판에 쓰러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근처의 목욕탕에서 구두를 닦는 한 청년이 우연히 저를 발견, 황급히 목욕탕 안으로 옮기고는 제 신분증을 보고 회사에 연락해 수위 아저씨가 달려오고 집에서 쫓아오는 난리가 났던 겁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열 손가락 모두에 동상이 걸려 한 동안 병원에 다니며 고생했습니다. 지금도 아내는 가끔 그때 얘기를 합니다.

 

저는 원래 밤 새도록 마셔도, 하루 종일 마셔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대체 주량이 얼마나 돼?” 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은 낼 수 없지만 남보다 먼저 취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연히 기억나는 게 시드니에 오기 몇 달 전, 2001 5월에 후배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저 혼자 마신 술이 소주 17병과 맥주 1,000cc였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훌쩍 지나 우리 아이들이 술자리의 주전멤버(?)가 돼갑니다. 두 아이 모두 아빠를 닮아(?) 술이 쎈 편입니다. 가끔 잔인했던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당부하곤 합니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많이 마시지 마라, 빈 속에 마시지 마라, 기분 나쁜 상태에서 마시지 마라, 급하게 마시지 마라, 남에게 과시하거나 지나친 호기 부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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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