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900번째 코리아타운입니다 #9002022-07-23 22:36

900번째 코리아타운입니다

 

이스트우드에서 채스우드로 넘어가는 길레인코브 국립공원 근처를 지나면서부터 느껴지는 나무 냄새 혹은 숲 냄새는 언제나 싱그럽게 다가옵니다. 그 향이 좋아서 저는 그 구간을 지날 때면 일부러 모든 차창들을 활짝 열어젖히곤 합니다.

 

교통량도 꽤 많고 규모도 제법 큰 동네로 이어지는 길임에도 정겨운 오솔길 정도를 연상케 하는 편도 1차선 도로는 일면 귀엽게까지 여겨집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호주라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스우드도 이제는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곳에 가면 호주에서 산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열 살쯤 돼 보이는 어린 소년 하나가 웨스필드 정문 앞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 앞에 놓인 색소폰 케이스에 2불짜리 동전 하나를 넣어주고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기분 좋게 풍겨오는 커피 향이 코 끝을 유혹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늘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틈이 없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월요일까지는 정말이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화요일부터는 다행이 날씨가 좀 풀려서 겉옷 없이 다녀도 좋을 정도가 됐습니다.

 

이번에는 채스우드와는 정 반대인 벨모아 가는 길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 곳곳에 하얀 조각구름들이 예쁘게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파노라마 썬루프를 완전히 열어놓으니 지붕 전체가 열린 듯한, 마치 오픈 카를 타고 달리는 기분입니다.

 

때맞춰 흘러나오는 John Denver‘Sunshine on my shoulders’가 솜사탕처럼 포근하게 다가옵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참 바쁘게도 살았던 마지막 대학 시절영문학 전공, 사회복지학 부전공, 교직과정 이수, 영자신문 편집국장, 야학, 학교 앞 카페에서의 아마추어 DJ 활동을 비롯한 각종 알바 그리고 사랑 만들기까지때문에 저는 항상 걷는 시간보다는 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180센티미터도 넘는 큰 키에 삐쩍 마른 체격의 제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캠퍼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여러 학우들에게 많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주 드물게 짬이 좀 나면 캠퍼스 잔디 위에 벌렁 드러누워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곤 했습니다.

 

맨날 혼자만 바쁜 것 같은 늙수그레한 영문과 복학생(?) 어쩌다 보니 학교에서 유명인 아닌 유명인이 돼버린 저에게 동료들은 썬맨 (Sun Man)이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 속에는 햇볕을 즐기는 저의 모습과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햇살 같은 따스한 사람이 돼달라는 바램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 버릇은 많은 고민 끝에 교사 대신 택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후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어쩌다 갖는 아내와의 데이트 길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빨리 하는 저를 따라오느라 아내는 뒤에서 헉헉대야(?) 했고 그렇게 뛰어다니는 버릇은 딸아이에게 그리고 에이든한테까지 콩콩콩콩 고스란히 이어진 모양입니다.

 

이번 주에도 참 많은 분들이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요 며칠 사이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는 여기저기 거의 빠짐 없이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코리아타운에 들어갈 광고에 대해 컨셉부터 카피라이팅, 디자인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에서 저를 보자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느껴지는 하이에나들의 냄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게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 낮 시간을 쓰고 나면 예외 없이 밤 열두 시를 넘겨 새벽 두세 시까지 컴퓨터 앞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 들고 계신 책이 900번째 코리아타운입니다. 애독자님들과 광고주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드리며 더더욱 가까이에 있는 코리아타운을 거듭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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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