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그 엄마에 그 딸? #8952022-07-23 22:34

그 엄마에 그 딸?!

 

지금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지만 예전에 자동차로 30분쯤 걸리는 곳에 우리 집이 있을 때는 종종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하트 모양으로 놓여진 수십 개의 촛불이 깜깜한 거실 한가운데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천정에는 알록달록 오색 풍선들이 붙어 있고 바닥 군데군데에는 꽃잎들도 뿌려져 있습니다.

 

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면 예외 없이 펼쳐지던 그림입니다. 식탁에는 맛있게 구워진 스테이크와 와인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결혼 전이었기 때문에 우리 네 식구는 그렇게 특별한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평소에도 아기자기하게 이것저것 꾸미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특별한 날에는 몇 시간 동안 혼자 그런 짓(?)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사에서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고는 스페셜 이벤트에 느낌표를 찍는 겁니다.

 

특별히 친하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무심할 정도로 쉬크한 아내는 유독 저한테만은 온갖 애교를(?) 다 떱니다. 아내의 저에 대한 애정표현은 아내의 친구들도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저를 향한 아내의 놀라운 모습 때문입니다.

 

자식보다는 남편이 우선이다라는 게 아내의 신념(?)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제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내는 그걸 식탁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착한 우리 아이들은 밤늦게 혹은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 때문에 맛있는 음식 앞에서 군침만 삼키다가 잠이 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나보다는, 내 가족보다는 남을 위해, 회사를 위해 더 열심이던 철저한 남의 편이었던 저를 아내는 그렇게 위하며 살았습니다. 뒤늦게나마 제가 아내에게 미안해 하고 지금에라도 잘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근본 원인입니다.

 

흔히 장모를 보면 그 딸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걸 그대로 보고 배우며 자란 딸아이는 엄마를 그야말로 빼다 박았습니다.

 

딸아이 흉을 좀 보자면, 녀석은 지 신랑이 야근을 하거나 약속이 있을 때면 우리 집에서 엄마 아빠와 놀기를(?) 즐겨 합니다. 하지만 지 신랑이 함께 있을 때는 그야말로 얄짤없습니다.

 

가끔은 지 신랑이 늦는다는 연락에 우리 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려 하다가 갑자가 일정이 바뀌어 신랑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음식도 먹지 않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신랑보다 먼저 집에 가있다가 현관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 엄마의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그대로 닮은 겁니다.

 

이 녀석 또한 애교덩어리는 되지 못하는 데도 유독 지 신랑한테만은 대단한 애교를 보입니다. 엄마 아빠 앞이라도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 돼 가끔 피식! 웃음이 납니다.

 

지난 일요일이 딸아이 신랑 생일이었습니다. 기쁜 날, 좋은 날에는 함께 밥을 먹는 우리 집 전통에(?) 따라 그날도 우리는 이스트우드의 한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공개된 생일 케익전혀 예기치 못한 모습의 케익에 딸아이 신랑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예쁘고 앙증맞은 케익을 빙 둘러싼 누런 빛깔 지폐들의 향연….

 

딸아이는 낮에 신랑 몰래 스무 장이 넘는 지폐를 한 장 한 장 돌돌 말아 랩에 싸서 생일 케익 둘레에 붙였습니다. “엄마 생일엔 이런 거 안 해주니?” 하는 아내의 얼굴에도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그건더 말할 나위 없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가장 소중한 사랑과 행복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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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