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인내의 달인? 천사? #8892022-07-23 22:31

인내의 달인? 천사?

 

당신은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사람이야.” 혈기왕성하던 시절, 제가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자주 듣던 이야기입니다. 매사를 비판적으로 보던 시각이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그것으로 변해 있었던 겁니다.

 

원래 해야 할 일은 철저히 하고 남한테서 싫은 소리 특히 억울한 소리를 듣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매사를 그런 식으로 대하다 보니 매우 도전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이렇게 쌈닭(?) 기질이 충만했던 저의 성격을 바꿔놓은 건 바로 아내였습니다. 얼핏 보기에 아내는 라는 걸 낼 줄 모르는 사람인 듯싶습니다. 연애기간을 포함하면 35년도 넘는 세월을 저와 함께 해왔지만 심각하게 큰소리를 내거나 흥분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부부싸움다운 부부싸움을 해본 게 세 손가락 안에도 채 들지 못하는 건 모두 아내 덕분입니다. 지랄 맞은 제가 핏대를 올리고 흥분이라도 할라치면 아내의 인내가 시작되곤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젊은 시절에는 제가 미안한 부분이 있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어도 일부러 더 억지를 부리고 화를 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른바 적반하장을 생활화(?) 했던 겁니다.

 

하지만 서로 맞부딪쳐야 한판(?) 제대로 붙어볼 수 있는 건데 아내가 그렇게 나오다 보니 항상 저 혼자서 흥분하다가 제 풀에 꺾이곤 했습니다. 현명한 아내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감정이 누그러지고 나면 이성적,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었던 겁니다. 저는 그렇게 트레이닝 되면서 성격개조 과정을 거치게 됐습니다.

 

실제로 남자 성격 같은 홀시어머니와 2대 독자 쌈닭 외아들 사이에서 아내가 받아내야 했던 어려움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만큼이었을 겁니다. 그걸 뒤늦게라도 깨닫고 지금이라도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애써보지만 그 또한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끔 저는 이 친구가 혹시 천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저나 우리 아이들한테는 물론, 주변 가까운 사람들한테까지도 늘 자기 자신보다는 남들을 더 생각하고 챙기는 걸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저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신랑이랑 결혼할 거예요.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어디 있어요?” 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망언을 일삼는 아내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입니다.

 

애기제 모발폰에 저장된 아내의 닉네임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아내의 친구가 제 모발폰에서 애기라는 단어가 뜨는 걸 보고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내의 모발폰에 저장된 내꺼라는 단어를 보고는 완전히 뒤로 넘어갔습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사람들이 애기내꺼를 외치고 있으니 아무래도 누구 말처럼 혼이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횡단보도에서 본 호주인 노부부의 모습이 새삼스럽습니다. 호호백발 할아버지의 손에는 역시 호호백발인 할머니의 손이 꼬옥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길을 건넌 노부부는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 어디론가를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할아버지가 차도 쪽에서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차 안에서 그러한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우리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살자.” 아내와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내일 또 한번의 결혼기념일을 맞는 인내의 달인어쩌면 천사일지도 모르는 아내그러한 아내에게 뭔가를 무조건 마구마구 잘해주고 싶은데 올해에도 또 하나의 미안함만 더해주고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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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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