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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크기와 모양만 비슷하다고… #8722022-07-23 22:23

크기와 모양만 비슷하다고

 

라면하면 무조건 삼양라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주황색 봉지에 든 삼양라면 한 개면 최고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유아독존 하던 삼양라면에 롯데라면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롯데라면이 삼양라면에 회심의 일격을 가한 건 농심라면을 내놓으면서였습니다. 색다른 맛은 물론, 전래동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컨셉으로 당시 인기절정의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을 내세운 TV와 신문, 잡지 광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역전의 기회를 잡은 롯데공업은 아예 회사이름까지 농심으로 바꾸고 쾌속항진을 계속했고 또 하나의 걸작품 신라면을 필두로 지금도 업계 선두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소주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꺼비 그림이 선명한 진로가 정답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후 진로는 참이슬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상표명을 바꾸며 소주계의 왕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소주 경월이 이름을 그린으로 바꾸며 변신을 시작했고 다시 에서 처음처럼으로 진화하며 환골탈태를 시도했습니다. 두산그룹에 인수돼 그린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경월소주는 처음처럼이 된 지금은 롯데그룹의 품에 들어 있습니다.

 

지난 5월 한국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 사이에서는 처음처럼이 이미 대세가 돼 있었습니다. 경월소주 시절의 맛과 인지도와는 천지차이일 정도로 달라진 처음처럼은 난공불락의 참이슬 아성을 공략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처음처럼이라는 이름도 한결 좋아진 소주 맛과 함께 이미지 쇄신에 커다란 역할을 한 듯싶습니다. 저 또한 즐겨 마시던 참이슬을 처음처럼으로 바꾸는데 별다른 망설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지금은 MSG가 환영 받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조미료 세계에서도 치열한 선두다툼이 있었습니다. 자타공인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미원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제일제당이 미풍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고아이미로 이름을 바꾼 재도전에도 미원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철옹성은 제일제당이 야심작 다시다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무너졌습니다. 미원이 뒤늦게 맛나를 내놓으며 반전을 꾀했지만 다시 판을 뒤엎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습니다.

 

라면이 됐든 소주가 됐든 조미료가 됐든 자기만의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1등 자리를 차지하거나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보령제약의 가래 기침을 멈추게 하는 진해거담제 용각산의 광고 헤드카피입니다. 은백색의 둥글고 작은 알루미늄 캔에 든 용각산은 정말이지 통을 흔들어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용각산을 모방한 비슷한 제품들이 몇몇 나오긴 했지만 용각산 같은 제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크기나 모양만 비슷하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던 겁니다.

 

실력으로 안 되기 때문에, 질적으로 따라 붙을 수 없기 때문에 가격으로 어찌 해보려는 건 옳은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질을 높이고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으로 거듭나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어설프게 모양이나 크기를 흉내내면서 반칙을 계속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패망의 길로 빠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아니다, 모른다, 그런 적 없다, 기억이 안 난다라며 끝없는 거짓말을 계속하는 참 나쁜 사람들과 가짜 혹은 짝퉁들이 난무하는 요즘이 더더욱 답답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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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