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이야기 전날 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게 다가옵니다. 어릴 때는 한국의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배웠는데 호주의 하늘은 그보다 훨씬 더 예쁜 것 같습니다. “우리, 커피 다 마시고 나면
잔디 깎을까?” 우리는 늘 그런 식입니다. 어느 하나가 그런
생각을 하면 다른 하나도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안 그래도 텁수룩해 보이던 뒷마당과 앞마당 잔디는 그렇게 환골탈태의 과정을
겪었고 제가 잔디 깎는 기계를 돌리는 동안 아내는 복숭아, 사과, 배, 레몬, 오렌지, 비파
나무 가지를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잔디에는 클로버를 비롯한 잡초만 골라서 죽이는 제초제를 시원하게
뿌려줬습니다. 지난해 그 고생을 하며 새로 깐 잔디 여기저기에 클로버며 잡초들이 버티고 있어 그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소에는 가까이하지 않던 시원한 콜라 한 캔이 묘한 상쾌함과 활력을 더해줍니다. 내친 김에 미뤄왔던 자동차 목욕까지 시작했습니다. 잔디를 깎고 정원을
정리하느라 이미 세시간 가까이 노가다를(?) 했음에도 어디에서 그 같은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비도 여러 차례 오고 때도 좀 끼어있었던 우리의 ‘애마’는 다시 뽀얗고 하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침 밥도 안 먹고 벌써 몇 시간 동안을 이러고 있습니다. 갓 이발을(?) 마친 잔디의 싱그러움과 함께 불 판 위에서는 맛있는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습니다. 문득 한국에서 빽빽한 고층아파트 단지에서 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나마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9만평이 넘는 중앙공원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아주 조금이나마 자연을 벗삼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 가봐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회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만 근무하지만 누군가 하나는 금요일에도 회사엘 가야 합니다. 회사로 도착한 이번 주 <코리아타운>이 잘 나왔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메일링 작업도 해야 하고 은행업무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딸아이가 이 일을 대신했지만 ‘손금 도둑놈’을 가지고부터는 다시 내 일이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침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시간도 어느새 오후 세 시를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다시 의기투합, 차에
낚싯대를 실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낚시를 안 가고 있었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많은 일을 한 우리에게 상을 주기 위해 특별히 번개(?)낚시를 하기로 한 겁니다. 예상대로 낚시터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는 제일 끝 쪽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낚시가 시작됐지만 두 시간 가까이 입질도 없고 온 사방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라면 두 개를 맛있게 끓였습니다. 그리고는
막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려는데 아내가 커다란 갈치 한 마리를 끌어 올립니다. 키도 제법 크고 덩치도
있는 녀석입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 이번에는 제 낚싯대에 한 녀석이 붙었고 이내 반짝반짝 은빛 찬란한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냈습니다. 라면은 이미 퉁퉁 불어터졌지만 그깟(?)
라면이 대수이겠습니까? 지난주 금요일은 우리에게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정말 유쾌, 상쾌, 통쾌한 하루가 돼줬습니다. 밤 아홉 시쯤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두 분이 오늘 장원입니다. 두 분이 그렇게 함께 다니시니 참 보기 좋습니다. 조심해 들어가세요.” 아내의 옆자리에서 낚시하던 분이 우리를 향해
던진 이 한 마디가 우리의 기분 좋은 금요일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어줬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