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노랑? 주황,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정말 열심히 닦았습니다. 세차전용
세제를 스펀지에 듬뿍 묻혀 구석구석 문질렀고 빈 맥주박스를 뒤집어놓고 올라서서 썬루프까지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그 위에 다시 힘차게 물을 뿌렸더니 우리의 애마(?)는 하얗고 뽀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 구입한
세차전용 긴 타월을 아내와 양쪽에서 잡고 쓱쓱 닦아냈더니 반짝반짝 윤까지 더해졌습니다. 내친 김에 힘 좋은 청소기로 자동차 내부까지 샅샅이 털어내고 물 티슈를
이용해 차 안 여기저기 쌓인 먼지들도 말끔히 닦아냈습니다. 땀은 좀 흘렸지만 기분은 더없이 상쾌해졌습니다. 그런데… 세차를 마치고 막 돌아서는데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아내와
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제가 세차만 하면 그날이든 그 다음 날이든 거의 예외 없이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머피의 법칙도 그런 머피의 법칙이 없습니다. 그제 오후, 날씨도 덥지 않고
비 예보도 없길래 아내는 뒷마당 텃밭이며 과일나무에 열심히 물을 줬습니다. 며칠 동안 햇빛이 강했던
데다가 물주는 걸 빼먹었더니 녀석들이 축 처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앞마당에 있는 레몬나무며 복숭아나무 이런 것들이 머리 텁수룩한 남자처럼
지저분해져 있어 그걸 깔끔하게 다듬어줬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세차… 우리 부부는
참 별나서 누구 하나가 일을 시작하면 또 다른 하나도 예외 없이 동참(?)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 좋은 세차를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선지 채 5분도
안돼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 겁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올 줄 알았으면 뒷마당에 물도 안 주고 세차도 안 했을
텐데… 왜 내가 세차만 하면 비가 오는 걸까?’ 혼잣말처럼
투덜대는 저를 향해 아내가 웃으며 한마디 합니다. “아까 물을 줬는데도 땅이 충분히 젖지 않더라구. 비가 많이 와서 꽃나무며 과일나무, 야채들이 좋아하겠어.” 세차도 ‘한참 세제로 닦을 때
또는 청소기로 내부청소를 할 때 비가 쏟아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식입니다. 워낙 매사에 초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아내이지만 늘 새롭게 여겨집니다. 어느새 아내는 뚝딱뚝딱 칼국수를 만들어냈습니다. 호박이랑 조개도 들어 있고 김이며 들깨가루가 고명으로 얹어져 있습니다. 며칠
전 담근 깍두기도 칼국수와 딱 어울릴 만큼 맛있게 익었습니다. ‘삼시세끼’의 ‘차줌마’ 차승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커다란 냉면그릇에 가득
담긴 칼국수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워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향 짙은
커피 한잔… 그렇게 우리의 수요일은 또 하나의 작은 행복으로 채워졌습니다. ‘남편에게 무지개 색 중에서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색이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혹시 빨강이면 밥 주지 마세요.’ 며칠 전 가까운 지인이 보내준
재미있는 미술심리테스트에 저는 ‘보라’라고 답했습니다. 결과는 이렇답니다. 빨강: 그냥 마누라, 주황: 애인
같은 마누라, 노랑: 동생 같은 마누라, 초록: 친구 같은 마누라, 파랑: 편안한 사람, 남색: 지적인
여자, 보라: 섹시한 여자.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제 아내는 저에게 빨강과 노랑 빼고는 다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고딩일 때 넌 초딩이었어. 쪼끄만 게 까불고
있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이는 저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녀석이 생각하는 건 늘 누나 같으니 제
아내한테 노랑은 절대 안 어울리고 빨강은 더더욱 거리가 먼 존재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