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이’로 산다는 것… 정대일이미지스튜디오. 1990년대
중반, 당대 최고의 여성지 <여원>에서 오랜 기간 사진부를 이끌어온 정대일 부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서울 강남 신사동에 오픈한 스튜디오
이름입니다. 10여년 동안 <여원>의 광고 및 편집 디자인을 총괄해온 조윤희 부장도 자신의 이름을 딴 조윤희디자인연구소를 열었습니다. 그들의 회사는 뛰어난 실력과 남다른 성실성,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렇게 사진이나 디자인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둔 후 나름의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쟁이’로 불리는 기자들에게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나중에 퇴직하고 나면 뭘 하지?’ 기자를
직업으로 택하면서부터 시작된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저는 운 좋게 몇 가지 다른 일들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출연은 물론, 대학이나 기업에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고 다른 신문, 잡지나 사보 등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제가 ‘괜찮은
회사’에 소속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이른바 프리랜서 활동을 할
때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글 쓰는 일만 가지고는 사진이나 디자인처럼 회사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문, 잡지에 글을 쓰면 2백자 원고지 한 장 당 3천원, 많이
주면 5천원 정도였고 그나마 재벌기업이나 외국기업 사보가 1만원을
줬으니 그 정도로는 회사를 꾸려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됐습니다. ‘훗날 정년 퇴임하면 아파트경비원 하면서 글이나(?) 쓸 거다’라는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곤 했지만 사실
저에게는 ‘여행전문가’가 돼야겠다는 목표가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데다가 글 쓰는 일이야 늘 하던 일이니 큰 문제가
없을 테고 여행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사진을 담아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 초년병시절부터
사진을 열심히 공부해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갖춰놨습니다. 중간에 뜻하지 않게(?) 시드니로
날아오는 바람에 여행전문가나 아파트경비원이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저는 지금 제가 쭉 해오던
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어 행복합니다. 지난 주, 김종학 PD가 자살로 62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인은 수사반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연출한, 한국
연출계를 대표하는 ‘거장’이었습니다. 그는 20년 가까운 PD경력을 바탕으로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종학프로덕션을 설립, 풀하우스, 태왕사신기, 이산, 베토벤바이러스, 하얀거탑, 추적자, 마의 등의 히트작들을 제작했습니다. 어제 끝난 이보영, 이종석 주연의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그 회사에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는 지난해 1백 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 ‘신의’를 제작하면서 자금문제를 겪었고 배우 출연료와 스타프 임금 미지급과 관련해 경찰과 검찰의 조사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쩌면 그는 제작자나 기업의 대표로서보다는 ‘연출쟁이’로서의 길을 걸었을 때가 훨씬 더 멋지고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진쟁이, 디자인쟁이, 글쟁이, 연출쟁이… 이
세상 모든 쟁이들의 건승을 새삼스럽게 기원 해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