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못 말리는 부부? #6772022-07-23 18:54

못 말리는 부부?!

 

담장너머 저만치에서 미쉘이 우리를 향해 뭐라고 얘기를 합니다. 빗소리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들리긴 했지만,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더니 그녀도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그 짓을(?) 하고 있는 아내와 저를 두고 미쉘은 어쩌면 미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집안 가꾸기에 열성인 사람인 탓에 그 반대로 멋지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였습니다. Australia Day 연휴였지만 얄궂게도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어디 가기에도 마땅치 않고 해서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 내서 이쪽 텃밭도 좀 늘려야겠어…’ 하던 아내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담장 아래쪽 텃밭을 두 배로 늘리는 작업을 했는데, 마당 중간에 있는 텃밭도 그 크기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태선씨, 기회는 찬스야! Okay Chance Very Much?” 말도 좀 이상하고 문법적으로는 도대체 성립이 안 되는 표현이지만 기자초년병 시절, 저를 아끼던 선배기자가 자주 쓰던 말입니다.

 

그는 함께 술을 마시다가 2, 3, 4차로 이어질 때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기회는 찬스야! Okay Chance Very Much?’를 외치곤 했습니다. 물론, 술자리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서였기는 했겠지만 그 속에는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선배기자의 평소 생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 요 며칠 동안 비가 계속 와서 땅도 많이 젖어 있고 지금 이 정도의 비라면 감당할 수 있겠어!’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퍼붓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우비를 하나 꺼내 입고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비 오는데지금 하려고?” 하는 아내에게 , 흙들만 좀 파놓고 들어갈 게. 아무래도 땅이 젖어 있을 때 하는 게 낫잖아라고 대답하고는 열심히 삽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비가 계속 왔던 탓에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땅속까지 말랑말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땅을 파헤쳐나가는데 어느새 아내가 저만치에서 제가 파놓은 흙 속의 잔디와 잡초들을 골라내고 있었습니다.

 

참 못 말리는 부부입니다. 하긴 아내 성격에 저 혼자 빗속에서 땅 파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둘 리가 없었습니다. 비는 우리가 텃밭을 늘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고 우비를 입고 있었음에도 빗물과 땀 범벅에 우리는 속옷까지 완전히 젖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고 시작했던 아내와 저는 어느새 둘 다 맨발이었습니다. 열심히 삽질을 하고 흙을 옮기고 땅을 고르고내친 김에 묵직한 텃밭 경계석들까지 모두 이사를 시켰습니다. 아내는 고추며 가지며 오이며 토마토, 이런 녀석들을 널찍널찍 옮겨 심는 작업을 했습니다.

 

텃밭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서로 부딪치며 몸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열아홉 평짜리 아파트에서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두 시간 넘게 텃밭 늘리는 작업을, 그것도 쉴새 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계속했습니다. 허리도 제법 아프고 땀 범벅, 빗물 범벅도 됐지만 시원하게 들이키는 찬물 한 잔이 주는 상쾌함은 못 말리는 부부의 또 다른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아내와 마주 보며 웃었지만 이런 종류의 미친 짓이라면 얼마든지 더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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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