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나는 문제 없어… #6722022-07-23 18:33

나는 문제 없어

 

하아이놈의 세상이 인재를 몰라주는 거지. 내가 이 회사에 몸 바친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구. 이 회사를 위해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이재철 과장의 혀는 이미 반쯤 꼬여 있습니다. 딴에는 부서원들 앞에서 나름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걸 텐데 정작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의 표정은 시큰둥합니다.

 

세상이 인재를 몰라준다? 글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이재철 과장이 그렇게 유능한 인재 급은 아닌 것 같고… 10년 넘게 회사에 몸바쳤다? 그런 사람이 동기들이 모두 차장, 부장 타이틀을 다는 동안 왜 만년과장타이틀을 떼지 못하고 있는 걸까. 자기보다 더 열심히 일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것도 여기저기에서 손이 번쩍번쩍 올라갈 것 같은데….

 

이 과장의 넋두리는 계속됩니다. “우리 본부장도 그러는 게 아니야. 왜 내 시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친구들 것만 챙기냐구. 내 열정과 땀이 배어 있는 내 시안을 그딴 식으로 무시하면 안 되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재철 과장이 내는 시안에서는 시대에 뒤져 있다는 느낌이 물씬물씬 풍겨 나온다. 회사의 미래를 쥐고 있는 신상품개발본부의 아이디어는 늘 신선하고 기발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과장은 늘 자기만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브레인 스토밍 자리가 이 과장의 말도 안 되는 억지 때문에 싸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가 성토하는 신상품개발본부 본부장도 이 과장 때문에 여간 고민이 아니다. 이 과장보다 후배인 사람이 이미 개발1팀 팀장 자리에 올라 있고 본부장은 사장과 임원들의 이재철 과장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려주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 과장은 본부장마저 싸잡고 있다.

 

회사생활에서 종종 보게 되는 광경입니다. 중간 간부쯤이 되면 위에서 요구하는 기대치와 밑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 끼여서 그야말로 샌드위치가 되기 십상입니다.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물론, 자기분야 외의 다른 지식도 한 두 개 정도는 갖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트렌드 속에서 내가 과장인데, 내가 입사경력 10년이 넘었는데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발전, 본인의 발전을 위한 이노베이션을 계속하지 않으면 어떠한 조직에서든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특히나 이재철 과장처럼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맙니다.

 

그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넋두리를 들어주는 부서원들은 물론, 그를 감싸주는 상사도, 그에게 막연하게나마 기대 내지는 미련을 두고 있는 임원들이나 사장도 언제까지나 그를 부축해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치열한,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말입니다.

 

이재철 과장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회사를 위해 10년 넘게 몸바쳐오고 있는데 사장을 비롯한 윗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억울하다는 생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주변 사람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문제 없어의 껍질을 깨고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그 문제를 극복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나는 회사에서 또는 조직에서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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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국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