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맥가이버?! 거실 TV 위에 걸려 있던 벽시계가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무소음인 데다가 모양도 예쁘고 앙증맞게 생긴 추까지 달려 있어 눈이 자주 가는
시계였습니다. 며칠 전에 배터리까지 새로 갈아 멈출 이유가 없었는데….
시계를 내려 여기저기를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무브먼트만 새로 사서 갈기로 하고 한쪽으로 치워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저를 향해 “자기야, 시계 간다!” 하며 시계를 들어 보였습니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만지고 두들겨도
꿈쩍도 않던 시계가 멀쩡히 잘 가고 있었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아내는 갑자기 말썽을 부리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정상으로 만들어놓는 신통한(?) 기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잔디 깎는 기계도, 갑자기 소리가 나지 않는 무선 마이크도, 갑자기 작동을 하지 않는
전자비데도 신기하게도 아내의 손만 닿으면 정상이 됐습니다. 낚시터에서도 갑자기 뻑뻑해져 움직이지 않던 릴이 아내의 손만 거치면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집니다. 이리저리 엉켜 낑낑대고 있는 낚싯줄도 아내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세 풀어냅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고백을 하자면… 낚싯줄을
매는 일도 아내가 도맡아 합니다. 요리조리 휘감고 여러 번 돌려서 단단히 묶는 낚싯줄이 저로서는 헷갈리기만
하는데 아내는 척척 해냅니다. 한국에서도 아내는 지점토를 며칠 배우더니 이내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을 예쁘게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곤 하더니 나중에는 이웃사람들에게 지점토를 가르쳐줄 정도로 전문가가
됐습니다. 시드니에 와서도 혼자서 종이 접기를 익히더니만 수십 개의 종이 접기로 정교하게
만든 십자가를 예쁜 액자에 넣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수영을 꾸준히 해온 아내는 특히 접영에 능합니다. 수영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전국규모 주부수영대회에서 아내는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땄습니다. 개인전에서는 처음 출전하는 큰 대회였던 터라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출발
신호를 못 듣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뒤늦게 꼴찌로 출발,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뒷심을 발휘해 1등과 아슬아슬한 차이로 은메달을 땄습니다. 단체전에서도 배영 주자가
워낙 늦어 꼴찌로 떨어진 팀을 접영 주자인 아내가 무서운 속도로 따라 붙어 믿겨지지 않는 동메달을 안겨줬습니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내의 승부욕과 집중력은 대단합니다. “내가 복부인 하면 잘 할 거야. 그치?” 아내가 웃으면서 가끔 하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도 아내는 이런저런
것들을 면밀히 따지고 분석한 후 집을 사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집은 늘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스트우드 집도 아내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실입니다. 이스트우드로 옮겨오기 위해 1년 넘게 인스펙션을 다녔는데 아내는
“지금 안 사면 안 될 것 같다”며 2009년 9월, 지금의
집을 샀습니다. 막 집값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던 그 시기를 놓쳤더라면 많게는 10만 불 정도를 더 줘야 했을 것이고 어쩌면 이스트우드 진입 자체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아내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에 저는 무엇이든 손만 대면 척척(?) 고쳐내는 아내를 향해
‘맥가이버’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얹어줬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