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시드니 재래시장? #5992022-07-23 17:52

시드니 재래시장?!

 

초등학교 시절, 엄마와 함께 이화여대 옆 신촌시장에 자주 갔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태선아, 엄마랑 시장 가자!” 하면 저는 만사를 제쳐 놓고 엄마를 따라 나섰습니다.

 

엄마 손 잡고 폴짝폴짝 뛰며 40분 정도를 걸어 신촌시장까지 가는 시간이 즐거웠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그곳 시장 분위기가 늘 정겨웠습니다.

 

엄마와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시장 아줌마들이 좋았고 엄마랑 먹는 순대국 한 그릇, 오징어 튀김 한 접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가끔씩은 순대국집 아줌마가 귀엽다며 건네준 막걸리 한 모금에 얼굴이 벌개지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저는 종종 시장을 찾곤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아내와 저는 재래시장을 빼놓지 않고 들릅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대형마트와는 달리 재래시장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와 더불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의 재래시장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시드니에도 그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장이 있습니다. 얼마 전 토요일 오후 시간을 이용해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플레밍턴 마켓을 찾았습니다.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그곳은 부쩍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Five! Five!”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실제로 웬만한 것들은 한 박스에 5불씩이었습니다.

 

우리는 사과며 귤이며 각종 채소와 과일들을 박스 단위로 실었고, 정말 질 좋은 당근 20Kg짜리 한 포대는 믿기지 않는 가격 2불에 샀습니다. 맛 있게 생긴 꽃게와 갈치도 우리의 트롤리에 담겼습니다.

 

어차피 우리만 먹기에는 넘칠 정도로 많은 양이어서 딸아이와 아들녀석,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이것저것들을 산 겁니다.

 

사실 플레밍턴 마켓에 가면 이런저런 채소와 과일, 생선들을 싸게 사는 맛도 있지만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활기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 개를 사서 반으로 뚝 잘라 나눠 먹는 케밥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문득 맨땅에 헤딩 하던 이민초기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플레밍턴 마켓에 가면 커다란 트롤리를 빌려주는 곳이 있습니다. 이것저것들을 박스단위로 사기 때문에 대형 트롤리는 어찌 보면 필수입니다.

 

3불을 내면 트롤리 하나를 빌릴 수 있는데 그때는 그 돈이 아까워 한국에 있을 때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소형 트롤리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물건을 살 때마다 여러 번에 걸쳐 차에 갖다 놓고 오곤 했습니다.

 

한 번은 물건을 차에 갖다 두고 오는데 폐장시간이라며 들여보내주지를 않아 한참 동안 아내와 이산가족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모발폰도 한 대밖에 없었던 시절이라 애를 태우며 문밖에 서 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새삼스럽게 그때 생각이 난 건 이번에 갔더니 그 트롤리 빌리는 가격이 1불 올라 4불로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처럼 4, 아니 1불이라도 아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플레밍턴 마켓에서는 4불짜리(?) 대형 트롤리 대신 조그만 자가용(?) 트롤리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플레밍턴 마켓 데이트를 하면서 옛날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너무 목이 말라 주유소에서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었다가 2 50이라는 말에 기겁을 하고 다시 놓던 아내의 모습과 3불이 아까워 트롤리를 못 빌리던 그 시절의 생각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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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