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First they came… #6942022-07-23 19:04

First they came…

 

김 편집장, 이번에 X전자 노사분규 르포기사 나간다며? 그거 무조건 빼. 그 기사 내보내면 X전자는 물론, X그룹 광고까지 모조리 뺀다는 연락이 왔어.”

 

1980년대 말, 노조탄압은 고사하고 회사에 노조가 생기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던 X전자에 대형 노사분규가 터졌고 우리는 한 달여에 걸친 현장취재를 통해 X전자 노사분규 르포기사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X그룹이 광고를 무기로 압력을 가해온 겁니다. 광고국장으로서는 대형고객을 놓치게 됐으니 난리가 났을 것이고 보고를 받은 사장 또한 연간 5억이라는 숫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기사를 빼라는 사장에 끝까지 맞섰지만 발행인 겸 편집인인 사장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X그룹은 괘씸죄를 적용, 그 기사를 다루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아 기사가 안 나갔음에도 X그룹 광고 전체를 빼겠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광고수입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재벌성장 이면사(面史). X그룹 사건 후 제가 새롭게 만들어낸 시리즈기획물 제목입니다. ‘재벌그룹들이 한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충분히 인정할 만 하다. 하지만 그들이 성장과정에서 남긴 역사 중 아픔이 되고 독이 됐던 사건들도 많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을 위해 재벌그룹들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시리즈로 돌아본다. 그 첫 번째 순서로 X그룹의 1960년대 대형 밀수사건을….’

 

아울러 저는 이를 시작으로 X그룹이 과거 행해온 10여가지의 아픈 과거들을 시리즈로 내보낼 것임을 알리는 사고(社告)를 만들어 우리회사 광고국장에게 들어가도록 슬쩍 흘려놨습니다. 나이 지긋한 광고국장은 사색이 돼 그것을 들고 X그룹 회장비서실을 찾았습니다.

 

결국 X그룹은 기 예정돼 있던 광고들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광고예산을 50퍼센트 더 늘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애써 숨기고 싶은 그룹의 치부들을 공개, 그것도 10여회에 걸쳐 적나라하게 공개 당하느니 입막음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을 겁니다. 속된 말로 똥이 더러워 피한 것이었겠지만 저로서는 그들에게 똥이 더럽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줬던 셈입니다. 한참 혈기왕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First they came for the communists, and I did not speak out because I was not a communist. Then they came for the Jews, and I did not speak out because I was not a Jew. Then they came for the trade unionists, and I did not speak out because I was not a trade unionist. Then they came for the Catholics, and I did not speak out because I was a protestant. Then they came for me and by that time there was no one left to speak out.

 

처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할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카톨릭을 탄압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몇 달 전, 한 지인으로부터 독일의 저명한 반 나치 신학자 마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 목사가 쓴 First they came…’이라는 시를 받고 왠지 모를 가책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20여년 전처럼 바른 소리를 해야 할 대목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발 내년부터는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거나 정신을 차려 평화로운 시간들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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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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