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이걸로 나중에 점심이나 한 끼 해요!” #4092022-07-23 15:34

이걸로 나중에 점심이나 한 끼 해요!”

 

아이구! 안녕들 하십니까?”

나른한 오후 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가 난 쪽을 향했습니다. 문 앞에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 저는 이번에 XX대 홍보실장을 맡은 OOO 교수라고 합니다. 제가 너무 늦게 왔지요? 조금 일찍 와서 여러분과 점심식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너스레를 떨던 그는 국장, 부장 이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자기 업무를 계속하는데 그 노 교수는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책상을 돌면서 아이구,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점심도 같이 못 하고이걸로 나중에 점심이나 한 끼 해요!” 하면서 책상마다에 하얀 봉투 하나씩을 놓고 지나갔습니다.

 

아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저기요! 잠시만요!” 이렇게 외쳤지만 노 교수는 싱긋 한 번 웃어 보이고는 다른 방으로 향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노 교수가 놓고 간 봉투였습니다. ‘정말 점심 값으로 딱 맞는’ 1만원짜리 한 장씩이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본 사람들은 일제히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의 방문은 계속 됐습니다. 찾아오는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시간은 항상 일정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난 2 전후! 그리고 멘트도 똑 같았습니다.

 

아이구, 오늘도 내가 늦었네요. 점심이라도 함께 하려 했는데이걸로 나중에 점심이라도 한 끼 해요!” 그가 건네주는 하얀 봉투 속에 든 금액도 언제나 1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가 찾아 다니는 방송사, 신문사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그를 기다리게 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니, 그 양반 올 날짜가 지났는데 왜 안 오시나?” 중독성 강한 그의 방문 전략이 확실한 효과를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TV나 신문 등에 대학관련 방송이나 기사가 나갈 때면 그 교수가 속해 있는 대학의 이름이 앞쪽에 나오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들이 언론에 몇 번째로 자기네 이름이 나오느냐에 매우 민감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앞자리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차지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솔직이 뚜렷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세 대학 다음으로 그 교수가 속해 있는 대학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면서 새삼스레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시간에 쫓길 때면 가끔 이런 방법(?)을 사용합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분들한테는 문만 빼꼼히 열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되시죠? 저 갈 게요!” 또는 원장님, 많이 바쁘시네요? 다음에 들를 게요!”

 

앞의 노 교수의 경우처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게 인간관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