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이 그 놈’은
이제 그만! “지금까지 이 지사께서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 사이에는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 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순간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돌다가 그가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김 부장님께서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때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에서는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당시 여권의 대선주자 중 한 명이었던
L 후보와의 단독인터뷰 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직 대통령 아무개의 장점과 현직 대통령의 장점을 고루 닮은 최고의 대통령 감’이라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제가 던진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함께 자리했던 비서진과 선거캠프 관계자들도 ‘헉!’ 소리를 내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이
대통령 선거 자체에 별다른 관심도 흥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권, 야권 모두 ‘지들끼리 찧고 까불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있었던 L 후보와의 인터뷰 기사는 ‘그 놈이 그 놈’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담은 채 다음 날 인쇄가 됐습니다. 비난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입니다. 저는 1987년 무렵부터 각종 선거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끊고 살아 왔습니다. 특히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긴박한 상황에서 ‘민주 인사들끼리 싸우면 암울한 시절이 계속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 ‘나 아니면 안 된다’며 나섰다가 결국 ‘죽 쒀서 개 좋은 꼴’을 만들어버렸던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곳 시드니는 제26대 한인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 명의 후보가 봉사와 혁신을
약속하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인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무관심’의 벽은 높습니다. 누가
한인회장이 될지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무관심의 벽’을
허물어내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꼭 ‘한인회장다운 분’이 한인회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다시 ‘그 놈이 그 놈’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선거 때만 여기저기를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한인회장이 된 후에도 한인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를 빼놓지 않는 분, 입으로만 하는
봉사와 헌신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러한 분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인회도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아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한인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오는 6월 10일에는 저도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20년 만에 ‘투표’라는 걸 해볼 생각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