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찌질한 부부의 작은 행복 #9262022-07-23 22:49

찌질한 부부의 작은 행복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오후 515분이었습니다. 아침 다섯 시쯤에 일어났으니 우리 둘 다 열두 시간도 넘게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허리도 아프고 등도 결렸지만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앞마당도 그랬지만 특히 뒷마당 잔디는 폭신폭신 아주 예뻤습니다. 몇 년 전 아내와 둘이서 죽을(?) 고생을 하며 다시 깔았던 게 이젠 그야말로 골프장 잔디처럼멋지게 자리를 잡은 겁니다.

 

몇 주 동안 우리 집 안팎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던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내친 김에 사과, 레몬, 라임, 오렌지, 복숭아, , , , 무화과, 비파, 포도과일나무들에 대한 가지치기 작업까지 모두모두 마쳤습니다.

 

2주 전 토요일(6)의 일입니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내와 저는 쉬지도 않고 곧바로 노가다에(?) 돌입했습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그렇게 일을 해댔으니 힘이 안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만 의견이 달라도 할 수 없는 일하지만 아내와 저는 닮아도 너무 닮아 있습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꼭 해내야 하고 이왕 할 거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하는 것까지….

 

그러다 보니 가끔씩은 지치고 힘들어 헉헉댈 때도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 집은 아주 깨끗하고 정리가 잘돼 있다고 하는데도 우리의 눈에는 여기저기가 지저분하고 손대야 할 곳들도 군데군데 많이 보입니다.

 

그날 작업도 원래는 이틀 동안 나눠서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인 일요일(7) 기온이 40도를 훌쩍 뛰어넘을 거라는 예보에 토요일에 모든 걸 마치기로 했던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날은 79년 만의 살인더위가 찾아와 시드니 서부 쪽은 47.3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온몸에서 진을(?) 쫙 빼고 나서 마주한 매콤한 양념돼지갈비에 시원한 물냉면 그리고 소주 몇 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우리의 행복한 주말은 그렇게 그 기쁨의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무리한 욕심 내지 않기, 너무 높은 곳 올려보지 않기아내와 제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고 그것을 좇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나대지(?) 않고 소리 없이 우리가 해야 할 것, 우리의 위치만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 같은 생각을 우리 아이들도 닮아주기를 바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 임마! 내가 6학년일 때 넌 초등학교에도 안 들어갔어. 어디 쪼끄만 게 한참 오빠한테 반말이야?” 가끔 제가 아내를 향해 던지는 말입니다. “내가 너 때문에 살을 뺄 수가 없어!”라는 아내의 핀잔 아닌 핀잔에 대한 나름의 응징(?)입니다.

 

아내는 운동을 참 열심히 합니다.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운동하는 걸로도 모자라 밤에는 집에서 스트레칭이며 짐볼 운동을 합니다. 살을 뺀다고 저녁은 아주 조금만 입에 댑니다. 그 같은 노력 덕에 아내는 40대 초반의 탱탱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우리, 두부김치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어때?” TV를 보던 저의 뜬금 없는 제안우리의 술판은 가끔 그렇게도 시작됩니다. 어지간해서는 제 뜻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아내는 괜스레 투덜대면서도(?) 이런저런 안주거리를 장만해 저와 술잔을 부딪칩니다.

 

스물 한 살의 어린(?) 시절, 얼떨결에 저를 만나 벌써 36년을 함께 해오고 있는 착한 아내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남편이 행복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따라주고 함께 해줍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 찌질한 부부의 작은 행복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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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