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부부의 작은 행복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15분이었습니다. 아침 다섯 시쯤에 일어났으니 우리 둘 다
열두 시간도 넘게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허리도 아프고 등도 결렸지만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앞마당도 그랬지만 특히 뒷마당 잔디는 폭신폭신 아주 예뻤습니다. 몇 년 전 아내와 둘이서 죽을(?) 고생을 하며 다시 깔았던 게
이젠 그야말로 ‘골프장 잔디처럼’ 멋지게 자리를 잡은 겁니다. 몇 주 동안 우리 집 안팎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던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내친 김에 사과, 레몬, 라임, 오렌지, 복숭아, 감, 배, 귤, 무화과, 비파, 포도… 과일나무들에 대한 가지치기 작업까지 모두모두 마쳤습니다. 2주 전 토요일(6일)의 일입니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내와 저는 쉬지도 않고
곧바로 노가다에(?) 돌입했습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그렇게
일을 해댔으니 힘이 안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만 의견이 달라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아내와 저는 닮아도 너무 닮아 있습니다.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꼭 해내야 하고 이왕 할 거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하는 것까지…. 그러다 보니 가끔씩은 지치고 힘들어 헉헉댈 때도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 집은 아주 깨끗하고 정리가 잘돼 있다고 하는데도 우리의 눈에는 여기저기가 지저분하고 손대야
할 곳들도 군데군데 많이 보입니다. 그날 작업도 원래는 이틀 동안 나눠서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인 일요일(7일) 기온이
40도를 훌쩍 뛰어넘을 거라는 예보에 토요일에 모든 걸 마치기로 했던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음 날은 79년 만의 살인더위가 찾아와 시드니 서부
쪽은 47.3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온몸에서 진을(?) 쫙
빼고 나서 마주한 매콤한 양념돼지갈비에 시원한 물냉면 그리고 소주 몇 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우리의 행복한 주말은 그렇게 그 기쁨의 크기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무리한 욕심 내지 않기, 너무
높은 곳 올려보지 않기… 아내와 제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고 그것을 좇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나대지(?) 않고
소리 없이 우리가 해야 할 것, 우리의 위치만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 같은 생각을 우리 아이들도 닮아주기를 바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야, 임마! 내가 6학년일 때 넌 초등학교에도 안 들어갔어. 어디 쪼끄만 게 한참 오빠한테 반말이야?” 가끔 제가 아내를 향해
던지는 말입니다. “내가 너 때문에 살을 뺄 수가 없어!”라는
아내의 핀잔 아닌 핀잔에 대한 나름의 응징(?)입니다. 아내는 운동을 참 열심히 합니다. 거의
매일 수영장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운동하는 걸로도 모자라 밤에는 집에서 스트레칭이며 짐볼 운동을 합니다. 살을
뺀다고 저녁은 아주 조금만 입에 댑니다. 그 같은 노력 덕에 아내는 40대
초반의 탱탱한 피부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우리, 두부김치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어때?” TV를 보던 저의 뜬금 없는
제안… 우리의 술판은 가끔 그렇게도 시작됩니다. 어지간해서는
제 뜻을 거스르지 않는 착한 아내는 괜스레 투덜대면서도(?) 이런저런 안주거리를 장만해 저와 술잔을
부딪칩니다. 스물 한 살의 어린(?) 시절, 얼떨결에 저를 만나 벌써 36년을 함께 해오고 있는 착한 아내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남편이 행복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따라주고 함께 해줍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 찌질한 부부의 작은 행복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