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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남의 돈 떼먹는 사람들은… #9172022-07-23 22:45

남의 돈 떼먹는 사람들은

 

그럴 것 같아서, 아무래도 너무 크게 일을 벌이는 것 같아서 여러 차례 만류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와서 자신감이 넘친 탓인지 신종철 사장은 간부들의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일산신도시 지역정보지로 착실한 성장을 계속하던 회사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서울역 앞 대형빌딩의 한층 전부를 쓰면서 본격 여성지 및 종합광고대행사로의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을 계속하던 회사는 결국 몇 달을 못 넘기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70여명으로 늘어난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됐고 밀린 임금도 적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고위간부 중 한 사람이었던 저는 직원들의 체납임금 해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이뤄진 후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정작 제 밥그릇은 하나도 챙기지 못한 찌질한 제가 서 있었습니다.

 

1997년 초의 일입니다. 1년반 동안 월급 한푼 안 받으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가 마지막 여원을 만들어주고 19969스카웃비 5000만원, 연봉 7000만원, 쏘나타3 한 대, 편집부국장 타이틀을 조건으로 옮겨간 회사에서 또 한번의 황당한 일을 당한 겁니다.

 

밀려있는 제 월급이나 6개월 후에 받기로 했던 스카웃비는 엄두도 안 나는 일이 됐고 자동차 할부금도 고스란히 저에게 넘어왔습니다. 더더욱 황당한 것은 회사의 은행대출서류에 무심코 싸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부도가 나자 3000만원쯤 되는 돈이 저의 부채로 추가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고 종적을 감췄던 신종철 사장이 숨어사는 집을 어찌어찌 알게 됐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그의 집은 일산신도시 외곽의 열세 평쯤 되는 작은 사글세 아파트였습니다.

 

늦은 저녁시간, 그 집 초인종을 눌렀고 아내와 저를 본 신 사장은 많이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저와 동갑인 그에게는 결혼을 늦게 한 탓에 초등학교에도 안 들어간 세 아이가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문밖의 낯선 방문객을 향해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찌질하게도 우리의 손에는 그 아이들을 위한 과자며 초콜렛, 음료수가 한 보따리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나서 우리 셋은 근처의 조그만 커피숍에서 얼굴을 마주 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지만 하나같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곤 했는데 김 국장 부부는 우리 아이들 과자를 사 들고 왔네요. 두 분께 정말 고맙고 미안합니다. 내가 꼭 재기해서 김 국장 돈부터 제일 먼저 갚겠습니다.”

 

그때부터 신 사장은 대출금 이자부터 시작해서 아주 아주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원금을 정리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가족이 시드니로 완전히 오기 직전인 200111월 초까지 그는 모든 돈을 다 갚았습니다. 재기에 성공해 러시아와 유통사업을 하고 있는 신 사장과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채스우드에서 사기사건이 터졌습니다. 40대 초반의 이 여성은 온갖 감언이설로 주변사람들을 현혹해 100만불쯤 되는 돈을 챙겨 한국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스트우드에서도 또 한 사람이 그와 비슷한 짓을 하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터지는 교민사회의 사기사건들그래서 처음 호주에 오는 사람들한테 한국사람들만 조심하면 된다는 당부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그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본인 스스로나 가족 특히 자식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남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반드시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20년 전 신종철 사장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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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