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장미에 그대를 그리며… 가수 겸 배우인 간첩 릴리는 독일군의 지령에 따라 프랑스에서 저명인사들과
접촉하며 정보수집 활동을 벌입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영웅적인
공군조종사 라라비 소령에게 접근하라’는 지령을 받습니다. 릴리는 라라비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내야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 정보국에 의해 라라비가 간첩죄로 체포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릴리는 자신이
간첩임을 자백합니다. 1970년에 제작된 줄리 앤드류스와 록 허드슨이 주연한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밀애 (密愛·Darling
Lili)’의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중학교 3학년 겨울, 예쁜 단발머리 여학생과 둘이서 서울 용산극장에서 봤습니다.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 영화를 용감하게도(?) 고교입시 3일 전에 몰래 접한 겁니다. 영화가 참 예뻤고 라라비가 릴리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끝에 붙인 ‘한
송이 장미에 그대를 그리며…’라는 글귀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당연히
그의 편지 옆에는 항상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놓이곤 했습니다. 영화에 삽입됐던 집시 바이올린 (Gypsy
Violin)의 아름다운 선율은 5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여전히 가슴을 울리며 다가오곤
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주 제 이야기는 아내가 못 보게
해야겠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가끔 영화관에도 가고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박수도 치곤 했습니다. 대형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 속에 들어 있으면 나름의 힐링을 느낄 수 있었고 코앞에서(?) 마주하는 연극배우들과는 또 다른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한국에 가면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영화가 됐든 외국영화가
됐든 열심히 보러 다닙니다. 지난해에도 우리는 한국에서 여러 편의 좋은 영화들을 봤고 운 좋게 VIP시사회에도 초대됐습니다. 하지만 이곳 시드니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두 그 놈의(?) 영어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집에도 어지간히 큰
TV가 있어 어느 정도 기분을 낼 수는 있지만 어찌됐거나 영화관에서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를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시드니에 한국영화가 들어오면 열심히 챙기려 듭니다. 다행이 우리동네 근처 톱라이드에 이벤트시네마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닿을 수 있어 좋습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군함도’를 봤습니다.
우리도 650만이 넘는 군함도 관객대열 속에 합류한 겁니다.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과도하게 스크린을 독점했다는 지적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이지만
우리는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비 데이 (Movie Day)라서
택했던 그날이 마침 72주년을 맞은 광복절이었고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 겪어야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일제의 잔혹한 만행, 그들의 개가 된 독립군 출신 거물급 인사의 처절한 배신과 친일행위, 지옥
같은 군함도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 수많은 가슴 아픔 속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시드니에도 한국영화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영화를 들여오는 회사는 중국 혹은 미국 회사들입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 좋은 영화가 사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큰 영화관에 아내와 저 둘뿐인 적도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관을 전세 낸 듯한 기분이 들어 팝콘과 콜라가 더 맛있긴 했지만 근본적인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민업체가 우리 영화, 우리 공연,
우리 문화를 직접 들여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상황들이 얼른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