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내복기인 vs. 인조인간 #4922022-07-23 16:34

내복기인 vs. 인조인간

 

고등학교 시절, 별명이 내복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참 특이하게도 1년 중 반 이상을 내복과 함께 살았습니다.

 

쉽게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그 친구는 9월 하순부터 내복을 입기 시작해 이듬해 4월 중순이 돼야 내복을 벗곤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창 추운 겨울날엔 자그마치 세 개의 내복을 한꺼번에 껴입고 다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추위를 몹시 타는 건지 아니면 습관이 돼버린 건지, 하여튼 그 친구는 우리 사이에서 내복기인으로 통했습니다.

 

2007 12월 한국에 갔을 때도 이윤석 그 친구는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처럼 내복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의 별명 중 하나가 인조인간이었습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빠져 지내는 것도 그랬거니와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옷을 아주 간편하게(?) 입고 다닌 탓이었습니다.

 

낡은 청바지에 옅은 청색 셔츠 하나. 평상시 제가 즐겨 입는 차림이었습니다. 중요한 취재가 있는 날에는 넥타이에 정장을 갖추기도 했지만, 찬바람이 쌩쌩 불고 살을 에는 듯한 날씨의 한겨울에도 저는 항상 그 차림이었습니다.

 

해마다 가장 먼저 반팔 셔츠를 입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두꺼운 옷으로 바꿔 입을 때까지 반팔 셔츠를 고집한 다소 별난 존재였습니다. 반면, 더위에는 꼼짝을 못해, 제 차에서는 사시사철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호주에 온 게 20019월이었습니다.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로 가니까 이곳은 봄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봄이라는데 저한테는 완전한 여름 날씨였습니다. 아니, 시드니에는 숫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없이 언제나 한여름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뜨겁게 내리쬐던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금세 서늘해지는 거였습니다. 게다가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해, 쨍쨍하던 하늘이 갑자기 소나기를 쏟아 붓곤 했습니다.

 

더 우스운 것은 겨울이라고, 춥다고 두터운 외투를 입고 부츠까지 신고 다니는 호주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반팔 차림이었던 저는 늘 뭐야…”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제 입에서 춥다!”는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저도 이제는 긴팔 옷도 입고 외투도 입으면서 집에서는 히터를 틀어놓고 지냅니다. 8년 가까운 세월을 시드니에 살면서 제 몸도 인조인간의 탈을(?) 벗고 시드니 화된 모양입니다.

 

요즘 우리집 뒷마당에는 낙엽이 가득합니다. 가끔씩은 바스락소리가 좋아서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일부러 밟아 보곤 합니다. 제겐 온통 여름뿐이었던 시드니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거기에 매달려 있는 낙엽에서 겨울의 길목을 느낍니다.

 

따갑게 내리 쬐는 햇빛 때문에 파라솔을 펼쳐놓고 의자에 앉아 있던 게 얼마 전인데, 지금은 햇볕이 없으면 서늘한 느낌이 듭니다. 요 며칠 사이, 변덕스런 날씨는 비를 계속 쏟아내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감기 걸린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번 감기는 워낙 독해서 심할 경우 토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도 지난 주 감기 증세가 조금 보이는 듯싶어 잽싸게 병원에도 가고 한국 식품점에서 쌍화탕을 사서 먹으며 감기를 쫓아 버렸습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의 문턱,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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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