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나랑 결혼 해줄래?” #4882022-07-23 16:31

나랑 결혼 해줄래?”

 

테이블 위에 맛 있게 익은 스테이크가 놓여졌습니다. 막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드는 아내 앞으로 조그만 박스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조금은 의아한 듯 저를 쳐다보던 아내는 이내 어머, 예쁘다!”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 중 한 개를 꺼내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나랑 결혼 해줄래?” 하고 물었습니다. 순간, 아내는 살짝 수줍은 듯한,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자기랑 결혼할 거야!” 아내는 나머지 한 개를 제 손에 끼워줬습니다.

 

지난 수요일(22)이 아내와 저의 스물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은혼(銀婚)이라 불리는 결혼 25주년은 매우 중요한 날로 여겨지지만, 아내와 저는 가끔 가는 클럽 레스토랑에서 맛 있는 스테이크와 커플링그리고 리마인드 프로포즈로 우리의 특별한 날을 기념했습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제가 늦깎이 대학생 생활을 시작한 이듬해였습니다. 저보다 여섯 살이 아래인 아내는 어린 나이에 저한테 속아서(?) 얼떨결에결혼을 했습니다.

 

결코 살갑지 않았던 홀 시어머니에 외아들 남편, 그리고 가난한 집안살림 꾸리느라 아내는 신혼 초부터 고생이 심했습니다.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고 휴일도 없이 뛰어다니면서도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자 남편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부도로 쓰러진 회사 살리기에 앞장서서 1년 반 동안 월급 한 푼 안 가져오던 찌질한남편 탓에 32평 아파트를 팔아 모든 빚을 갚던 날, 아내는 보이지 않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드니 이민초기 2년 동안 세븐 데이로 Woolworths 청소를 하면서 아내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병석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대소변을 한 달 넘게 받아내야 했음에도 오히려 더 잘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얘기하는 친구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살아 오면서도 그랬지만 아내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22인치의 가냘픈 허리를 가진 귀엽고 예뻤던 20대 초반의 아내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아내에게 그다지 좋은 남편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5년 넘게 함께 해오면서 무심했던 것, 잘 못했던 것, 미안했던 것들 투성이입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장미 바구니와 케익을 들고 집에 들어서던 저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80여 개의 풍선과 1백 개가 넘는 촛불 장식, 그리고 오색 빛깔 전구들이 거실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물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의 마지막 감동을 위해 아내는 혼자 그런 것들을 준비했던 겁니다. 그날 저녁 우리 네 식구는 꽃살 구이에 술잔을 부딪치며 행복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주말, 가까운 분들과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저에게 매주 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 글을 아주 재미 있게 쓰시더라구요하자 그분 남편이 나는 코리아 타운 집에 안 갖고 갑니다. 이 사람이 어찌나 들볶아 대는지…” 하며 웃었습니다.

 

제가 아내 이야기, 아내 자랑을 너무 많이 한다는 핀잔 아닌 핀잔이었습니다. 오늘도 본의 아니게 아내 자랑을 넘치도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늘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다가오는 아내에게, 결혼 25년이 됐지만 언제나 갓 결혼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아내에게 정말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레 하게 됐던 2009 4 22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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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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