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작은 농장, 큰 행복 #4702022-07-23 16:12

작은 농장, 큰 행복

 

상추, 깻잎, 오이, 호박, 갓, 쑥갓, 미나리, 토마토, 방울토마토, 딸기, 메론, 쑥, 고구마, 토란, 마, 부추, 파, 아욱, 생강, 가지, 고추, 마늘, 열무, 배추, 파프리카, 허브…. 우리 집 정원 한 쪽 텃밭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채소 또는 과일 식구들 이름입니다.

 

조금 더 뒤쪽으로 가면 알로에, 귤, 낑깡, 키위, 배, 파인애플, 도토리, 체리, 복숭아, 오렌지, 레몬, 아보카도, 망고, 바나나, 블루베리 그리고 이름 모를 열대과일 몇 가지가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대충 계산해봐도 50가지 가까운 채소나 과일들이 우리 집 텃밭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셈이고, 정원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가득합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작은 농장 하나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2006년 1월 26일,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꾸준히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사서 키워낸 이 녀석들은 이제 우리 식구들에게 작은, 아니 넘치는 기쁨과 행복을 주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상태로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수가 우리의 눈과 입,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해줍니다.

 

어제는 아내가 뒷마당 저만큼에서 오이 하나를 따왔습니다. 그걸 반으로 뚝 잘라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오이 모종을 사서 키워낸 첫 수확이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사서 먹는 오이보다 훨씬 더 아삭아삭 맛 있음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 뒷마당에서 키워낸 호박을 따다가 호박전도 부쳐 먹고 호박찌개, 호박칼국수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몇 개는 옆집에 사는 호주인 아주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상추와 깻잎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아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나눠주곤 했습니다. 예쁘게 열린 토마토, 딸기, 블루베리, 레몬 그리고 오렌지를 따 먹는 기분은 정말이지 새롭습니다.

 

호주인 노부부가 살 때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됐던 930스퀘어미터의 넓은 땅이 우리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내의 손길이 꾸준히 닿으면서 행복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퇴근 후 또는 쉬는 날 접하는 채소며 과일이며 꽃들은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매일매일 몰라 보게 커지고 많아지는 녀석들을 보면서 갖게 되는 신기함, 그리고 녀석들에게 물을 주면서 맡게 되는 흙 냄새는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아내와 딸아이, 아들녀석과 함께 집 안팎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습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전구를 달고 앞 뒤 정원에 이런 저런 장식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덥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하나씩 모양새를 갖춰 가는 우리 집을 보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앞 마당에 앉아 나눠 먹는 맥도날드도 유난히 맛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사방으로 예쁘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면서 사랑이 담긴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행복의 종류와 색깔, 그리고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 식구는 지금 이 순간에서 더할 나위 없는 크기의 행복을 만나고 있습니다.

 

올 여름은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미국 경제도, 한국 경제도, 교민 경제도 온통 뒤숭숭합니다. 내년부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를 보듬고 작은 것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얻는 지혜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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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