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형님 먼저, 아우 먼저” #5012022-07-23 16:38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형님은 형수님과 조카들이 있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야!” 아우는 한밤중에 자신의 볏단을 들고 형님 댁으로 가, 형님네 볏가리에 몰래 쌓아 둡니다.

 

아우는 어머님을 모시고 사니까 우리보다 쌀이 더 있어야 하겠지?” 형님은 자신의 볏가리에서 볏단을 꺼내 아우 몰래 아우네 볏가리에 얹어 줍니다.

 

뿌듯한 마음에 아침을 맞은 형제는 자신들의 볏단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그 날 밤에도, 그 다음 날 밤에도 서로 다른 시간에 똑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볏단을 가득 짊어진 두 형제는 달빛 아래서 서로 마주치며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니형님!” “아우자네도?”

 

한국의 유명한 전래동화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내용입니다. 형님은 아우네 집에 쌀이 모자랄까 봐, 아우는 형님 댁에 쌀이 더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한 밤중에 서로 볏단을 몰래 갖다 놓는 모습한국인의 정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맛있게 끓여진 라면 한 그릇을 놓고 서로 먼저 먹으라고 권합니다. 서 너 차례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며 라면 그릇을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훈훈한 형제애를 느낍니다.

 

두터운 형제간의 사랑을 농부의 마음 즉, 농심으로 표시한 당시 농심라면봉지에는 볏단을 짊어지고 마주 서 있는 형제의 그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197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농심라면’ CF는 당시 만년(?) 2등 롯데식품이 훗날 정상을 차지하는 밑바탕이 됐습니다. 롯데식품은 이를 계기로 회사이름까지 아예 농심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덕이었습니다.

 

음식점에서도 식사 후 서로 돈 내겠다고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면 거의가 한국 사람들입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착한 마음을 가진 한국 사람들 특유의 정서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우리집 욕실 벽에 달려 있던 히터가 망가졌습니다. 우리가 집을 사기 전부터 십 수 년 동안 사용돼온 그 놈이 수명을 다했던 모양입니다. 유난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당장 Bunnings Warehouse로 달려가 새 전기히터를 하나 샀습니다.

 

하지만 그걸 설치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워낙 옛날 제품을 교체하는 터라 간단히 콘센트에 꽂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기선을 새로 연결하는 등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분은 정말 미안하지만 내일, 일요일 오후에 오셔서 도와주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일요일 낮 시간, 그 분은 부인과 함께 우리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전기 전문가답게 새 히터 교체작업을 깔끔하게 마쳤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향하는 부부에게 우리는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굳이 수고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쉬는 날 멀리까지 와서 수고 해줘 고맙다는 뜻이었지만, 정말 여러 차례 밀고 당기다가 결국 그 부부는 봉투를 우리 손에 쥐어주고 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부부를 바라보며 문득 형님 먼저 아우 먼저생각이 났습니다. 서로를 아끼고 챙겨주는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그 마음이 곳곳으로 퍼져 나갈 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욱 따뜻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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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