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참 희한하게도 녀석은 저만 보면 그렇게 얘기를 잘 합니다. 얼굴을 가까이 한 채 눈을 마주 보며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연신 뭐라 얘기를 합니다. 가끔은 신이 나는지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며 소리까지 꺅꺅
지릅니다. 제 아내하고는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부터 입을 보름달만큼이나 크게 벌리고
싱글대는 녀석이 저한테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쉴새 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겁니다. 태어난 지 6개월째로 접어든
녀석은 이제 혼자 뒤집기도 제법 잘 하고 우리와 나란히 앉아 TV도 열심히 봅니다. 특히 걸 그룹 멤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는 한층 더 몰두하는 녀석의 모습이 결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에이든 (Aiden)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미소천사’ 혹은 ‘수다천사’를 아내와 저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납니다. 저는 사실상 매주 두 번 녀석과 얼굴을 마주 하는데 아기를 낳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딸아이가 목요일 오후시간에는
마감작업을 위해 아기를 데리고 회사로 오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제 자리 옆 자신의 전용(?)의자에 앉아, 때론 제 품에 안겨 그렇게 몇 시간을 지내곤 합니다. 평소 아내와 저는 일주일에 한번 ‘에이든
데이’ 즉, 에이든 만나는 날을 정해놓고 딸아이 집을 찾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일년에 한두 번 딸아이 집을 찾을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처음 몇 주 동안은 수요일 저녁시간에 딸아이 집으로 가서 아기도
보고 딸아이 부부와 맛있는 것도 사다 먹곤 했습니다. “근데 말이야, 종석이가 일 끝나고
와서 편하게 쉬고 싶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제가 동시에 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딸아이 신랑이 다리 쭉 뻗고 쉴 시간을 뺏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우리는 그때부터 에이든 데이를 월요일 점심시간으로 옮겼습니다. 아무리 아들처럼 생각하고 스스럼 없이 지내는 딸아이 신랑이지만 그에게도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편하기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내친 김에 우리는 딸아이와
갖는 시간도 가끔씩은 슬쩍슬쩍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이든 데이를 빼먹는 날이면 희한하게도 딸아이가 우리 집에
올 일이 생기거나 우연히 길에서라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미소천사와의 만남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갖고 있는 겁니다. 얼마 전 추석 날, 온 식구가
우리 집에 모였을 때 녀석도 혼자 떨어져 있기를 싫어해 우리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녀석도 젓가락을 챙겨 들고 테이블에 끼어 앉으려 들 겁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 때보다 이 녀석을 훨씬 더 많이 안아주고 예뻐 해주는
거 같아….” 가끔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하며 속으로 미안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때는 생각이 어렸던(?) 탓에 이렇게 못해줬던 게 우리 아이들이나
아내에게는 참 많이 미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딸아이를 도와 아기도 잘 봐주고 기저귀도 잘 갈아주는 딸아이
신랑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딸아이 신랑이 퇴근 후 편하게 잘 쉴 수 있도록 에이든 데이를 월요일
점심시간으로 바꾼 것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서로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원칙은 사랑하는 사람, 아주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더욱 지켜져야 할
필수덕목일 것 같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