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장장 스물다섯 시간 동안 혼자서 발언을 계속한 진상필 의원이 마침내 단상에서 쓰러집니다. 국회의장이
임시국회 폐회선언 의사봉을 두드린 직후입니다. 병역비리에 탈세, 위장전입까지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른 주철순 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에서의
임명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한 그의 ‘합법적 방해공작’은 그렇게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여당인 국민당은 대통령의 의지와 당론으로 밀어붙였고 야당인 한국민주당은 여당과의 물밑협상에 의해 당론을 바꾸고 소속 의원들을 모두
퇴장시켰습니다. 여당 단독으로 총리 임명동의안이 통과될 상황에서 여당 소속인 진상필 의원이 “이의 있다”며 발언을 시작한 겁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한국민주당 의원들과의 공조로 무난하게 25시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을
진상필 의원 혼자 그 시간을 버텨낸 겁니다. 결국 진상필 의원의 용감(?)무식한
행동으로 비리의 온상 주철순 총리후보자는 자진사퇴 했습니다. 속이 후련한 장면이었습니다. 여당 의원이면서도 대통령과 당에 정면으로 맞서는 진상필 의원의
모습이 현실의 그것이 아니었기에 아쉽기는 했지만 저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지난주 목요일 저녁에 방송된 한국 KBS 2TV 수목 드라마 ‘어셈블리 (Assembly)’의 열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용접공으로 일하던 해고노동자에서 국회의원들의 당리당략이 얽힌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된 진상필은 매사 좌충우돌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날 진상필 의원 혼자 25시간 2분을 버텨낸
행동은 ‘필리버스터 (Filibuster)’였습니다. 사전에는 ‘의회 등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일’이라고 풀이돼 있습니다. 다수당의 횡포에 맞서는 소수당 또는 소수의견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입니다. 필리버스터는 1957년 스트롬
서먼드 미 연방상원의원이 민권법안을 반대하며 24시간 8분의
최장기록을 세웠고 한국에서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64년 4월 20일에
필리버스터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한일비밀회담에서 일본 비자금 1억 3000만불을 받았다고 폭로해 여당에 의해 발효된 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안 표결을 막기 위해 5시간 18분 동안 발언을 계속했던
겁니다. 이후에도 1969년 8월 29일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3선개헌
반대를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진상필 의원은 필리버스터 막바지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이게 국민을 위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요구합니다. 주철순
후보자는 스스로 물러나십시오. 그것이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박수를 받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입니다. 주철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국은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면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국회속기사들에게 자신의 다른 발언들은 하나도 기록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것만은 꼭 남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주철순 후보자가 혹시 총리로 임명돼도 우리 국민들은
이 사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 국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대했다고… 우리 국민들은 그런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단 하루도, 아니
단 1분 1초도 우리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주철순 후보자는 정말 총리가 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참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에게도
진상필 의원 같은 ‘국민진상’ 정치인들, 공직자들이 실존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행복하고 희망적일 텐데 말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