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고정초? #8012022-07-23 21:36

고정초?!

 

숙아, 책을 펼쳐도 너의 커다란 눈망울과 예쁜 미소가 자꾸 아른거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 아무래도사랑에 빠진 거 같아… I have a crush on you….” 까까머리들의 와! 하는 함성과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웁니다.

 

, , 주원이가 사랑에 빠졌대! 근데 숙이가 누구지?” 아이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주원이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숙아, 우리 이번 주 일요일엔 학교 앞 빵집 말고 기차 타고 인천으로 놀러 가자….”

 

숙이가 누구야? 어느 학교 몇 학년이야?”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어쭈, 꼴에 여자친구는 보호해주겠다 이거지? 그래, 남자다워서 좋다. 하지만 임마,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코앞인데 영어책 위에 자꾸 여자친구 얼굴이 겹쳐지면 되겠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영어수업시간에 여자친구한테 연애편지를 쓰던 주원이가 선생님한테 딱 걸려 급우들 앞에서 본의 아닌 연애편지 낭독을 당한 겁니다.

 

이놈들아, 너희도 딴 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그래야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거 아니야? 그리고 지금 중 3 여학생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마. 다 너희 형수 감들이니까. 너희 짝은 지금 요 옆에 있는 지원초등학교 6학년 애들이야. 알았어?”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고등학교 입학시험 끝날 때까지는 공부에만 집중하려 하는데 저도 자꾸 여자친구 얼굴이 떠올라 공부에 집중이 안됩니다. 어떡해야 합니까?”

임마, 네가 좋아하는 그 여학생도 다 화장실 가서 똥 싸고 그래. 헷갈릴 땐 그 여학생 똥 싸는 모습 생각하면서 떨쳐버려.”

 

그런데선생님, 은수는 똥 싸는 모습까지도 너무 예쁠 거 같은데요?”

에라. 이 미친놈아!” 선생님의 작은 방망이가 현도의 까까머리 위에서 춤을 춥니다.

 

사춘기 시절 우리의 연모(?)대상이었던 동갑내기 여학생들은 선생님 말씀대로 훗날 대부분 우리의 형수님들이 됐습니다. 실제로 우리 때만 해도 여자 나이가 더 많은 연상연하 커플은 물론, 동갑내기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습니다.

 

까불지 마라. 내가 고 3일 때 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쪼끄만 게 어디서 한참 오빠한테 까불고 있어.” 가끔 아내한테 이런 농담을 던지지만 사실은 매사에 사려 깊은 아내가 누나 같고 엄마 같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기야, 여기 미끄럽다, 조심해이 돌 밟지마, 잘못하면 넘어지겠어여기 나뭇가지에 머리 안 부딪히게 조심해….” 매주 토요일 트레킹에서 아내는 자신의 뒤에서 걷는 저를 이렇게 챙겨줍니다.

 

저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고 체구도 작은 아내는 저를 어린아이처럼 걱정(?) 해주다가 일행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내에게 저는 고정초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고딩 걱정 하는 초딩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이 제가 고정초를 처음 만난 지 꼭 33년 되는 날입니다. 요즘 연인들 식으로 계산하자면 만난 지 12045일이 되는 겁니다. 매년 뭐 특별한 걸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저는 그 동안 오늘을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요즘 들어 딸아이 부부가 아기를 낳고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시절의 저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딸아이 신랑이 딸아이에게 해주는 것처럼 아내에게 해주지 못했던 게 참 많이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남편의 찌질함 속에서도 21년 동안 묵묵히 홀시어머니를 모셨던, 그리고 저한테는 늘 희생적인아내가 새삼 고마워지는 서른 세 번째 오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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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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