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청진기 그렇다고 해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최대한 빨리 건너기
위해 종종걸음을 칩니다.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횡단보도에서 조금 떨어져 잠시 주춤거리다가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하면 슬쩍 묻혀서(?) 건너기도 합니다. 모두 저 때문에 차가 못 지나가는 일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조금은 찌질하고 별난
탓입니다. 이스트우드가 꽤 오래 전부터 많이 복잡해졌습니다. 한인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쪽도 ALDI 건물이 들어서고부터는 차가
부쩍 많아졌고 사람들로 늘 북적댑니다. 주차도 시쳇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중국 상가들이 있는 지역은 상황이 좀 더 심각합니다. 특히 nab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차를 가지고 지나려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로 꽤 오랜 시간을 지체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행자가 돼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차들이
얼른 지나갈 수 있도록 잰걸음을 치곤 하는 겁니다. 반면,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든지 한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왠지 일부러 그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간혹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껏 여유를(?) 잡고 느릿느릿 길을 건너면서 괜히
차도 한 번 흘깃거리고 지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늑장을 부리는 동안 다른 보행자들이 뒤를 이어 차는 계속
서있어야 하고 이내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그 사람도 차를 몰고 나오면 반대의 입장이 될
텐데 그런 생각이나 배려는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사거리에서 직진신호가 들어왔지만 좌회전 차들은 보행자가 있을 경우 빨간
화살표가 사라질 때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유롭게 어슬렁어슬렁 걷거나 모발폰을 들여다보며
건너는 사람들 때문에 차가 한 대도 지나지 못하고 빨간 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서로서로 편안하고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려운
모양입니다. 매일매일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터라 주차돼 있던 차가 나갈라치면 언제 왔는지
귀신(?)같이 다른 차가 와서 기다립니다. 이때도 답답한
상황은 종종 벌어집니다. 분명히 운전자가 탔는데도 뭘 하는지 계속 꾸물꾸물 대는 겁니다. 뒤에 있는 차들이 빵빵거리고 아우성을 쳐도 한참을 지나서야 차가 움직입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텐데 말입니다. 찌질한 저는 기다리는 차가
있으면 제가 더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차를 빼게 됩니다. 당연히 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이런 답답한 일들은 안 생길 것 같습니다. 한 간호사가 있습니다. 이 간호사는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환자들, 특히 어린아이나 노인들의 가슴에 차가운 청진기를 대는 걸 몹시 안쓰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만의 작은 비법을(?) 만들었습니다. 간호사실에서 출발해 환자에게 가는 동안 청진기의 끝을 한 손으로 꼬옥 쥐고
가는 겁니다. 그렇게 배려 깊은 간호사의 손 안에서 온기를 품은 청진기가 환자의 가슴에 닿을 때 환자의
가슴도 그 간호사의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는 겁니다. 모두모두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작은 마음들을 가진다면 요즘처럼 이래저래
추운 겨울날 우리의 마음도 한결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