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사랑하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호주이민 초기시절, 아내와 저는 2년 가까이 Woolworths에서 새벽 청소를 했습니다. 1년에 딱 5일, New Year’s Day, Good Friday, Easter
Sunday, Christmas Day, Boxing Day를 빼고는 매일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야 했던 당시로서는 늦잠, 아니 굳이 늦잠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을 조금 더 자보는 게 소원 아닌 소원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새벽청소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숨돌릴 틈도 없이 신문, 잡지사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1년에 다섯 번 있던 ‘Woolworths가 문을 닫아 청소를 안 하는
날’은 정말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주말에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늦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꼭 늦게까지 자는 건 아니더라도 그냥 편하게 침대 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보너스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금년
초부터 이 같은 ‘주말 늦잠’을 ‘산행’과 맞바꿨습니다. 새벽
청소를 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네 시간 정도 산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면 우리의 한 주는 건강과 행복으로
가득 찹니다. “산에 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넉넉해요. 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큰 거지요.” 얼마 전 한 선배회원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서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며 스쳐 지나지만 좁은 길에서는 한쪽이 지날
때까지 다른 한쪽이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스무 명쯤 되는 우리 일행이 다 지날 때까지 한쪽으로 비켜 서있습니다. 대열을 끊고 먼저 지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일행이 너무 많아 그들에게 먼저 가라 해도 그들은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우선’을 양보합니다. 그
선배회원의 말처럼 정말 마음이 넉넉해 보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행하는
부부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띕니다. “You can do it! You can do it!” 두 달
전쯤이었을까, 비가 꽤 자주 내리던 때의 일입니다. 우리
앞으로 젊은 호주인 부부가 두 아이와 함께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는 너무 어려서 아빠가
등에 업었고 다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는 엄마 아빠의 보호를 받으며 조심조심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불어난 물로 인해 어지간한 크기의 물웅덩이가 나타났고 아이는 그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아이는 물웅덩이에 놓여진
나무토막을 밟고 건널 것인지 아니면 옆쪽으로 돌아 갈 것인지를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걱정스런 표정이었지만 아빠는 “You can do it! You can do it!”을 외치며
아이 스스로가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응원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이내
나무토막을 밟고 물웅덩이를 건너는 걸로 결론을 내리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이가 그곳을
건널 때까지 3, 4분 정도를 서서 기다려줬고 아이가 물웅덩이를 건너자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이 엄마와 아빠도 자신들을 기다려준 우리에게 흐뭇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여느 때도 그랬지만 그날은 이곳 사람들의 아이들 교육방식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넉넉함도 주고 받을 수 있어 그 행복의 크기가 훨씬 더 했습니다. 주말
늦잠과 맞바꾼 산행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깊게 느끼면서….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