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궁합’ 이야기 #5872022-07-23 17:45

궁합이야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 드라마에서나 봐왔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바로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말 그대로 펄펄 뛰시면서 결사반대를 외치셨습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젊어서 혼자 되신 당신이 평생을 믿고 의지해온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 같은 변고가 일어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으셨으니….

 

아드님이 이 아가씨와 결혼하면 이 아가씨가 스물 아홉 되는 해에 아드님이 죽습니다.” 정말 섬뜩한, 소름이 오싹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 세대가 대부분 그랬지만 자식의 결혼으로 가기 위한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식(?) 중 하나가 바로 궁합이었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소개로 용한 스님을 만나 저와 제 아내의 궁합을 봤는데 그런 끔찍한 얘기를 듣고 만 겁니다. 

 

아이가 엄마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데도 성격이 밝고 예의가 바르더라. 예쁘고 참하게 생긴 아이가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더 정이 간다며 아내에게 후한 점수를 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다른 데서는 다 좋다고 하는데 유독 그 스님만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건 그 스님이 잘못 봤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결혼해서 잘 사는 게 중요하지 그깟 궁합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 평소 어머니 말씀 잘 듣고 동네에서도 소문난 효자로 통하던 제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겁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는 어머니와 그깟 궁합 때문에 헤어질 수는 없다는 제가 정면충돌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용하다는 스님과 무속인들을 열 명도 넘게 찾아 다니면서 궁합을 봤습니다. 도저히 설득이 안 되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 보기 위해서 용하다는 궁합 전문가들판정들을 받아 들고 가기로 했던 겁니다.

 

하지만 왜 열한 군데에서는 모두 궁합이 좋다고 하는데 단 한 곳의 나쁘다는 얘기 만 믿으려 하느냐?”는 항변에도 이 결혼을 하면 며느리가 스물 아홉 살 때 아들이 죽는다는 끔찍한 얘기에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착하고 여린 아내는 저를 만나면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헤어질 수는 없는데 어머니를 설득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몇 달 동안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결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어머니는 우리의 결혼을 승낙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에 가서 아내와 저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불공을 드렸습니다.

 

그때 아내와 저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궁합 같은 건 보지 말자고…. 그 다짐대로 다음 달에 결혼하는 딸아이에 대해 우리는 궁합의 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결혼할 아들녀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이 훨씬 지나고 30년을 향해 가는 지금 생각해도 궁합때문에 벌어졌던 그때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를 않습니다. 모르긴 해도, 가장 좋은 궁합은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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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