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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5832022-07-23 17:43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영화 해운대에서 보던 장면 그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심한 광경들이 처참하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 ? ?” 소리밖에는 낼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지진이 잦은 나라였던 터라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주 금요일 일본 동부지역을 강타한 규모 9.0의 지진과 10미터가 넘는 쓰나미는 말 그대로 대재앙이었습니다. 게다가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 공포까지 더해진 일본은 지금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최악의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얄미운 일본, 이번 기회에 아예 폭삭 가라앉아 버려라든가 옛날부터 지은 죄가 많아서 그 벌 받는 거다. 잘 됐다등의 이야기들을 합니다.

 

한국 교회의 한 원로목사는 일본의 대지진은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간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이다. 이 기회에 주님께 돌아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일본의 도쿄도지사는 쓰나미는 일본인들이 탐욕스러워진 데 대한 천벌이다. 이번 쓰나미를 계기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일본인의 욕심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해서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이 크나큰 재앙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 특히 맺힌 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지만, 축구든 야구든 일본한테만은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지만, 근본이 착한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금 크고 작은 일본 돕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있다! 한국의 한 언론이 미증유의 대재앙 앞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일본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면서 뽑은 헤드라인입니다.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확대되면서 도쿄 일각에서는 물건 사재기가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 전체를 이끌어가는 정신은 여전히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메이와쿠 가케루나 문화입니다.

 

실제로 대재앙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일본은 무서우리만치 침착합니다. 수많은 재난현장에서 봐왔던 약탈이나 강도, 방화 등의 범법행위들을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장면은 사태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일본 언론들은 재난현장이나 희생자들의 모습을 놓고 과열 취재경쟁을 벌이지 않고, 국민들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질타하지 않습니다. 이미 터진 일에 대한 비난보다는 수습과 복구,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난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해자들의 흐느낌과 울부짖음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 배려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쓰나미 현장에서 간신히 구조된 노인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 대신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는 이야기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구호용으로 나온 우동 열 그릇을 놓고 수십 명이 서로 나는 괜찮으니 먼저 먹으라며 양보 릴레이를 펼쳤다는 이야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메이와쿠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일본의 문화를 대변하는 이 한 마디가 문득 20여년 전 제가 취재현장에서 들었던 한 일본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한국 사람과 11로 붙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얼마든지 자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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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