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비에 그 딸?! “어머, 아드님인가 봐요. 아드님이 키도 훤칠하고 아주 잘 생겼어요. 아빠를 쏙 빼 닮았네요.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아드님이
아빠보다 훨씬 더 멋지고 잘 생겼어요!” ‘뭐라고? 아들놈이 나보다 더
멋지다고? 이런….’ 모르긴 해도 세상 아버지들 중에 이렇게
투덜댈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딸이 엄마보다 더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샐쭉할 엄마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내 자식이 ‘엄마 아빠보다 낫다’ 혹은 ‘엄마 아빠 닮아서 멋지다,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이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엄마 아빠는 안 그런데 쟤는 왜 저래?’라든지 ‘에미 애비나 자식이나 하는 꼴이 똑같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건 정말
불행하고 슬픈 일입니다. “선영이한테 한 번 시켜보면 어때?”
2005년 10월, 회사를 인수하고 얼마 안돼
아내가 저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코리아타운>에
읽을거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자를 한 명 쓰기로 했는데 느닷없이(?) 아내가 딸아이 이야기를 한 겁니다. 이제 겨우 열아홉 살, 게다가
글 쓰는 걸 전공하지도, 특별히 기자생활을 한 적도 없는 아이인데… HSC에서
한국어 성적이 높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이름이 실리긴 했지만… 망설이는 저에게 아내는 “선영이가
자기 닮아서 잘 할 거야. 내 말 믿고 한 번 시켜봐”라며
압력을(?) 가했습니다. 딸아이의 <코리아타운> 기자생활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습니다. 주말이면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시티, 스트라, 캠시,
채스우드, 파라마타, 리드컴 등을 누비며 거리인터뷰를
했고, 한인밀집지역을 도는 한인타운 탐방기사를 쓰느라 여기저기를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지금이야 자기 차를 몰고 다니지만 그때는 버스며 트레인을 타고 다녔으니
그야말로 발에서 땀이 나도록 걷고 뛰었을 겁니다.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아빠에 대한 오기였을까, 아니면 타고난 근성이었을까, 딸아이는 정말 열심히 했고 잘 했습니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경력에 맞지 않게(?) 좋은 기사들이 나왔고 순간순간 깜짝 놀랄만한 결과물들도 만들어졌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가끔은 새벽까지
딸아이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잘 해야 한다’는 저의 평소 생각이 은연중에 딸아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던 모양입니다. 어느덧 딸아이는 <코리아타운> 10년 차 베테랑이 됐습니다. 기자로 출발해서 카피라이터, 광고코디네이터, 마케팅관리, 회계관리, 광고디자이너, 편집디자이너 등 모든 분야를 순환보직을 통해 골고루
섭렵하고 있습니다. 훗날 ‘아빠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 위한 전문성을 차근차근 갖춰나가고 있는 겁니다. 저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말, 그리고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제대로
못한, 혹은 잘못한 것들을 아들 딸 세대에서 고치고 바로 잡아야만 ‘부모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칫 부모보다 못해서 ‘그 애비에
그 아들’ 혹은 ‘그 에미에 그 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부모가 이뤄놓은 좋은 점들마저도 도매금으로 싸잡히게 됩니다. 아울러 이 같은 평가는 궁극적으로 본인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빠보다 낫다… 제가, 세상 모든 부모들이 듣고 싶은 말입니다. ‘아빠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속상한데 결정적으로 ‘그 애비에 그 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절망입니다. ‘그 애비에 그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더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