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는 놈은… ③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12년
전 시드니공항에서의 제가 그랬습니다. 덩치도 크고 무섭게(?) 생긴
요원들이 입국심사대에서 제 가방을 홀랑 까뒤집어놓고 일일이 검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옷가지들은 물론, 가방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모조리 뒤지는 그들의 모습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저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대체 무슨 이유로 내 가방을 이렇게 들쑤셔놓는
거냐?”고 큰 소리로, 그리고 거칠게 항의를 했습니다. 저도 나름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데다가 워낙 당당하게 따지고 들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움찔하며(?) 대답했습니다. “당신도 잘 알다시피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이 그저께 테러를 당하지 않았느냐. 그 때문에 보안검색이 강화된 것이니
이해 해달라.” 그러고 보니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탑승객들의 가방이 일일이 뒤져지고 있었습니다. 9.11 테러가 난 바로 다음 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9월 13일 아침 일찍 시드니에 도착했으니 그럴 만도 했겠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여러 차례 해외취재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공항에서 가방검사를
당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그날 그 사람들의 행태가 영 못마땅했던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을 떠나기
전 부쳤던 컨테이너가 도착했습니다. ‘TV랑 에어컨만 빼고 찌그러진 냄비까지 다 갖고 오라’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한국에서 쓰던 오만 가지 것들을 컨테이너 하나에 몽땅 실었습니다. 짐들을 풀자 이런저런 것들을 쌌던 박스들이 수십 개 나왔고 우리는 그 것들을
잘 펴서 집 앞 잔디밭에 쌓아놨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근한 동안에 어떤 사람이 와서 벨을 눌렀고 집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박스들을 가리키며 뭐라고 열심히 얘기를 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은 카운슬 직원이었을 것이고 이런 얘기를 했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박스들은 지금 내놓으면 안 된다. 나중에 카운슬에서
큰 쓰레기 쳐가는 날이 있으니 그때 내놓고 박스들은 가져가기 좋게 끈으로 묶어놔야 한다.” 시드니에 온지 일주일도 채 안됐고 그런 규정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아내는 “이거 다 버릴 거니까 가져가라”고만 얘기했답니다. 그 사람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돌아갔는데 몇 시간 후 그 많은 박스들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참 마음 좋은 카운슬 직원을 만났던 겁니다. 한국에서 고2, 중3을 다니다가 시드니에 온 아들녀석과 딸아이는 하이스쿨에 들어가기 전 1년
가량을 퍼블릭 랭귀지스쿨에 다녔습니다. 두 아이 모두 남 앞에 용감하게 나서는 성격이 아니어서 영어로
말하는 걸 많이 꺼려했습니다. 한때는 영어를 제법(?) 했던, 그리고 한동안은 영어와 관련된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했던 아빠 앞에서는 특히 영어로 말하는 걸 부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역전이 됐습니다. 영어 자체를 크게 쓰지 않는 저로서는 갈수록 영어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공부를 계속한 아들녀석과 딸아이는 영어가 꾸준히 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영어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두 아이가 나서는 일이 보편화됐습니다. 12년 전 두 아이가 그랬듯 이제는 제가 두 아이 앞에서
영어 쓰는 게 창피해졌습니다. 12년 전 오늘 아침,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제가 시드니공항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왜 내 가방을 함부로 뒤지느냐?”고 겁 없이(?) 대들던 그때의 호기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