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찌질한(?) 결혼기념일 #6892022-07-23 19:01

찌질한(?) 결혼기념일

 

2주 전, 한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펑션센터에서 진행된 그 결혼식이 지금도 참 예쁘게 기억됩니다. 결혼식은 화창한 토요일 오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야외에서 진행됐습니다. 신랑신부가 영어권이었던 터라 하객들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고 결혼식도 호주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날의 결혼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랑신부를 철저히 주인공으로 대접 해줬다는 점에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간결한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가 준비되기 전 30여분 동안 하객들은 넓은 잔디 위에서 음료나 와인, 간단한 음식들을 즐기며 서로 친분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리셉션장으로 안내된 하객들은 처음부터 신랑신부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결혼식들이 신랑신부는 제쳐두고 하객들이 먼저 식사를 하는 통에 신랑신부는 뒤늦게 식사를 하거나 상당수의 하객들이 빠져나간 후에야 자리에 앉게 되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그날 결혼식은 하객들보다 신랑신부 식사를 먼저 준비해주고 그들이 주인공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친구들의 축가, 축사 그리고 댄스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계속됐습니다. 신부 아빠의 딸에게 주는 편지편지를 다 읽고 난 아빠가 목이 메인 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왜 저렇게 안 해줘?” 가끔 아내가 웃으며 저에게 던지는 핀잔 아닌 핀잔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멋진 프러포즈 장면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여자를 향해 반지를 내밉니다. ‘나랑 결혼 해줄래?’ 때맞춰 멋진 음악까지 배경으로 깔립니다.

 

조금은 식상한(?) 방법이긴 하지만 자동차 트렁크가 열리면서 오색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남자는 여자를 향해 사랑 고백을 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갖는 로망, 낭만적인 프러포즈 모습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프러포즈다운 프러포즈 한 번 못해보고 결혼이란 걸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굳이 미화시키자면 자연스럽게결혼을 한 겁니다. 생각을 못했던 건지 찌질한 탓이었는지 아내를 향한 낭만적인 프러포즈 과정을 빼먹었던 게 살면서 문득문득 걸리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와 저는 여전히 찌질합니다. 지난 월요일 결혼기념일 저녁, 우리는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 대신 딸아이 부부와 아들녀석을 집으로 불러 오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나는 밖에서 비싼 음식 먹는 것보단 이렇게 아이들하고 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게 더 좋아.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귀한 전복구이도 먹잖아?” 바보 같은 아내는 이번 결혼기념일에도 그렇게 밋밋한 저녁식사를 자청했습니다.

 

낮에 배달된 보랏빛 꽃이 활짝 핀 난에 기뻐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에 행복해 하는 아내하지만 정작 결혼기념일 선물이 없어 조금은 섭섭해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

 

사실은지난 일요일 종영된 한국 SBS TV 주말드라마 돈의 화신에서 짠! 하고 나타났던 주인공 황정음의 파란색 복재인 백을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길래 그 백을 결혼기념일 선물로 몰래 준비했습니다. 그런데한국에서 그 백의 인기가 폭발하는 통에 물량이 달려 이달 말에나 배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그걸 오더 해놓고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품 백의 10분의 1에도 채 못 미치는 가격의 파란색 복재인 백그래도 아내는 분명 그 백을 받아 들고 많이 좋아할 겁니다. 빨리 제품이 만들어져 아내의 파란색 복재인 백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번 주에는 제 칼럼을 못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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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