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농사꾼 다 됐어… #6832022-07-23 18:58

농사꾼 다 됐어

 

이 다음에 나 은퇴하면 아파트경비원 할 거야. 멋지지 않아? 머리 희끗희끗해서 경비일 하며 노트북 놓고 글도 쓰고…. 나중에 아파트 경비원 하면서 수필집 펴낸 전직 기자라는 타이틀로 기사나 좀 내줘.” 한국에 있을 때 술자리에서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종종 했던 이야기입니다.

 

선배, 걱정 말아요. 우리가 칼라로 아주 대문짝만하게 내줄 테니까. 대신 책 잘 팔려서 돈 많이 벌면 술은 선배가 계속 사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술자리는 늘 유쾌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뜬금없이(?) 호주로 날아오자 후배들은 지금도 가끔 기사거리도 놓치고 공짜 술도 날아갔다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농사나 지어야겠다또는 퇴직금 받으면 장사나 해야겠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의 꿈은 참 소박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파트경비원도 워낙 경쟁이 치열해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농사나라든가 장사나라는 표현을 놓고 농사는 아무나 짓고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는 모양이야. 농사나, 장사나 라니…” 하는 당사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로 농사가 됐든 장사가 됐든 아파트경비원이 됐든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없을 듯싶습니다.

 

한국에서 아파트경비원을 하겠다던 저는 지금 호주에서 농사꾼,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내를 따라 농사꾼 보조정도가 된 듯싶습니다. 물론, 농사꾼 보조 또한 결코 쉽거나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오른쪽 검지 끝부분이 짙은 갈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손가락은 물론, 손톱 사이에까지 갈색 물이 진하게 뱄고 3일 정도가 지날 때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뒷마당 텃밭에 있는 깻잎을 수백 장 따낸 결과입니다.

 

다른 집들은 깻잎이 잘 안 된다던데 어쩐 일인지 우리 집 뒷마당에는 깻잎 풍년이 들었습니다. 수시로 따서 먹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여러 차례 깻잎 장아찌를 담갔음에도 여기저기에서 깻잎들이 쑥쑥 자라 덩치가 큰 녀석들은 거짓말 안 보태고 제 손바닥만큼 크게 자라 있었습니다.

 

제가 깻잎을 따는 동안 아내는 예쁘게 잘 자란 고추며 가지들을 열심히 담아냈고 한 켠에서는 하늘을 향해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 월남고추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저만치에는 씨를 뿌려 키운 여러 개의 한국 무들이 제법 씩씩하게 자라 있어 덩치가 좋은 두 녀석을 뽑아냈습니다. 좀 더 있으면 모습을 드러낼 고구마들도 텃밭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아이구구, 허리야!” 이런저런 것들을 따내고 땅을 고르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100퍼센트 유기농채소며 과일들을 손에 들고 있는 아내와 저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이 가득합니다.

 

일주일 만에 또 깎은 잔디 덕분에 앞마당 뒷마당에 풀 내음이 가득합니다. 시원한 물줄기를 온몸에 받는 꽃이며 채소며 과일들도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뒷마당 한 켠에서는 오늘도 앵무새들이 가득 모여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우리 집 고양이 해삼이를 보고는 혼비백산 도망을 쳤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해삼이도 괜스레 녀석들을 쫓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해삼이가 갑자기 폴짝폴짝 뛰기 시작합니다. 가끔씩 나타나는 개구리를 따라 자기도 그렇게 뛰며 함께 노는 겁니다. “해삼아, 고기 먹자!” 주방 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도 우리 집 저녁시간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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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