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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우리의 ‘놀이터’가 즐거운 이유는… #6342022-07-23 18:13

우리의 놀이터가 즐거운 이유는

 

이거 우리가 농사지은 건데 한 번 들어봐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아주 찰진 삶은 옥수수 몇 개를 우리의 손에 쥐어줍니다. 우리의 놀이터에서 가끔씩 만나는 낚시 마니아 어르신입니다.

 

여러분, 제가 드디어 갈치를 잡았습니다. , 정말 크네요.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십시오!” 한껏 들뜬 목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계속 허탕을 치다가 몇 주 전 드디어 여섯 번째 도전(?)만에 갈치 한 마리를 잡은 분입니다.

 

저도 조금 전, 여섯 시쯤 왔어요. 어제요? 한 마리도 안 나왔어요. 이번 주에는 화요일엔가 제가 민어 한 마리 잡고는 전부들 꽝이었습니다.”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주로 금요일 저녁부터 그곳에 가기 때문에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놀이터를 찾는 그분을 통해 최근의 상황을 듣곤 합니다.

 

목소리가 <코리아 타운> 김 사장님 같으신데안녕하세요?” 어둑어둑한 곳에서 서로를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목소리 만으로, 때로는 느낌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넵니다. 가끔씩은 컵라면이나 오뎅, 커피, 과자, 땅콩 같은 것들을 서로 나눠 먹기도 합니다.

 

아내와 제가 늘 함께 다니는 덕분일까, 최근 들어서는 부부가 함께 오는 분들도 조금 늘어난 것 같습니다. 보기에 참 좋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오는 분들 중에는 아내와 제가 나란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내는 그곳에서도 단연 스타(?)입니다. 수많은 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상황에서도 빈틈을 찾아 자신의 찌를 정확히 던져 넣고,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혼자 갈치나 민어를 잡아 올리는 모습은 제가 봐도 참 희한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우리 놀이터는 전반적으로 너무너무 조용합니다. 원치 않는 테일러나 옐로테일들만 열심히 잡힐 뿐 우리가 진정 원하고 기다리는 갈치나 민어는 정말 뜸합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민어는 그나마 가끔 잡히는데 우리가 갈치를 만난 건 벌써 한 달쯤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들 못 잡는 가운데 종종 우리만 운 좋게 민어를 한 두 마리, 또는 서너 마리씩 낚아 올립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 오늘은 좀 잡으려나?” 하는 기대심리입니다. 워낙 물고기가 안 잡히는 상황에서도 그런 마음으로 주말이면 그곳을 찾습니다. 이미 살짝 중독현상도 들어 있는 탓입니다.

 

요즘에는 뜬금 없이 비까지 내리곤 합니다. 가랑비 정도는 그냥 맞아내고 조금 심할 때는 우비를 입거나 자동차 트렁크 문을 올리고 그 밑에 서서 비를 피하곤 합니다. 물론, 날씨가 맑을 때는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고, 가끔은 자욱한 물안개에 넋을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제 옆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불을 켜고 봤더니 포썸 한 마리가 미끼 봉투에 손을 넣어 정어리를 훔치고 있었습니다. 불빛에 놀란 녀석이 후다닥 도망을 쳤는데 어느새 녀석의 손에는 정어리 한 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는 녀석은 사람과 워낙 친해져서 인지 아니면 제가 만만해 보여서였는지 겁도 없이 제 옆에서 정어리 한 마리를 맛 있게 먹어 치웠습니다.

 

요즘처럼 물고기가 안 잡힐 확률이 훨씬 높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놀이터를 꾸준히 찾는 이유들입니다. 말 그대로 그곳을 찾는 자체로,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물론, 갈치나 민어를 잡으면 더 좋을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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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