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에 그 딸?! ‘사장님, 청소기 고쳤어요.’ 오후 시간, 느닷없이(?) 카톡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뭐지? 분명 아침까지도 해결이
안 됐다고 해서 ‘2주 넘게 뭐하고 있는 거냐’고 한 마디
하고 나왔는데… 그새 들고 가서 고쳤나? 평소 ‘사장님’이라는 표현을 안 쓰는 딸아이가 그런 말까지 써가면서 얘기하는 걸 보면, 그리고
장난할 사안은 더더욱 아닌 걸 보면…. 궁금한 마음에 곧바로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야. 내가 고친 거야. 저쪽에서는 일단 고장상황을 전화로 해결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아프터서비스센터를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답답해서 내가 뜯어봤어. 앞쪽 나사를 풀어서 헤드를 분리시키고 호스를
이리저리 맞춰봤더니 ‘딱’ 소리가 나면서 끼워지더라구. 부러진 게 아니었나 봐….” 얼마 전, 회사에서 쓰는 청소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dyson’이라는, 청소기 중에서는
최고급 브랜드,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제품을 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얼마 쓰지도 않고 문제가 생긴
겁니다. 헤드 아래쪽 호스(?) 하나가 빠졌거나 부러졌거나
해서 모터는 정상적으로 작동 되는데도 빨아들이지를 못하는 겁니다. 저도 몇 차례 호스를 끼우려 애써봤지만
이내 빠져버리곤 했습니다. 결국 딸아이에게 아프터서비스를 신청하라고 얘기했고 이메일로 문의한 딸아이가
그 회사에서 받은 답은 ‘일단 전화로 고장상황을 체크하고 고쳐보자. 그러고도
안 되면 가장 가까운 수리센터를 알려주겠다’ 였습니다. 하지만 전화로, 그것도 영어로
상황을 얘기하면서 수리한다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고… 결국 딸아이가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나선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다 큰 여자아이가 사무실 바닥에
퍼질러(?)앉아 청소기를 분해하다니…. 어쨌거나 청소기는 지금 쌩쌩 잘 돌아갑니다. 특유의 강한 흡입력으로 사무실 바닥을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문득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아내는 맥가이버?!’라는 제목으로 아내의 손재주 얘기를 했지만 아내는 희한하게도 웬만한 건 스스로 뚝딱뚝딱 고쳐내곤 합니다. 그런데 딸아이도 어느새 그런 엄마를 보면서 ‘작은 맥가이버’가 된 겁니다. 평소에는 급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뭔가 일이 질척거리면 ‘에잇!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며
달려들어 해결하는 게 우리 가족의 공통점입니다. 그래서 늘 ‘사서
고생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 누군가 하겠지, 언제간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갖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전에는 아내와 제가 <코리아타운> 사람들이 쉬는 금요일마다 PO Box를 확인하고 은행업무를
보곤 했습니다. 회사로 배달되는 <코리아타운> 다섯 덩어리를 안으로 들여놓고 꼭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곳들에 대한 메일링 작업도 우리가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을 꽤 오래 전부터 딸아이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안 하면 엄마 아빠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하겠지 보다는 ‘내가
먼저 하는 게 낫다’는 생각, 내 것을 악착 같이 챙기기보다는
‘내가 조금 손해 보는 편이 낫다’는 사고방식… 딸아이가 엄마를 쏙 빼 닮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세대가 세대인 만큼 딸아이에게는 우리와 조금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아내나 제가 워낙 마음이 약해 지나치게 억울한 손해를 보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반면 딸아이는 ‘한계’를 넘어서면 똑 부러지게 지적을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한없이 찌질한 우리보다는 그렇게 ‘조금은 업그레이드
된’ 딸아이의 모습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일면 가져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