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내 여자친구 이야기 #6382022-07-23 18:14

내 여자친구 이야기

 

처음부터 밝은 친구였습니다. 거기에 20대 초반이 주는 풋풋함과 귀여움이 더해져 나이 차가 여섯 살이나 나는 늦깎이 대학생에게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얼굴을 마주했으면 그닥 할 얘기도 없었을 테고 명동이나 종로에서 라면이나 떡볶이로 때우는 가난한 데이트였음에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그녀는 항상 깔깔대며 즐거워했습니다.

 

너는 비판적이 아니라 부정적이야.” 젊은 시절, 선배나 동료들에게서 종종 듣던 이야기입니다. 6년여의 짧지 않은 방황기간 동안 비판이 지나치게 깊어졌던 탓인지 제 성격은 많이 삐뚤어져있었습니다.

 

그 즈음에도 캠퍼스에는 최루가스가 여전했고 영자신문 (English Newspaper)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제 뒤에도 가끔 기분 나쁜 그림자가 느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맨 앞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는(?) 움직임을 펼쳤기에 별 탈은 없었습니다.

 

영어영문학 전공에 사회복지학 부전공, 그리고 교직과정 이수에 야학활동과 신문사 일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어린 여자친구와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깡마른 체구에 텁수룩한 머리, 딱 보기에도 어지간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반면 제 여자친구는 언제나 웃는 얼굴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순진덩어리그녀에게 이런저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초저녁, 아무리 늦어도 밤 아홉 시를 넘기지 않던 그녀의 귀가시간이 저를 만나면서부터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 열두 시를 채웠습니다. 귀가가 늦는 손녀가 걱정돼 버스정류장에 나와 기다리던 그녀의 할머니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미친년제가 작년 이맘때 결혼준비를 하는 딸아이에게 미친년소리를 수도 없이 했지만 사실 원조 미친년은 제 여자친구였습니다. 그토록 착한 딸, 순진한 손녀가 저를 만나 허구한날 늦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나다니더니 결국에는 그 못마땅한 놈과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나이는 여섯 살이나 많은 늙수그레한 대학생, 키만 껑충 컸다 뿐이지 성격도 까칠하고 삐쩍 마른 데다가 홀시어머니에 외아들, 내 집은커녕 사업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빚이 집 한 채 값상황이 이쯤 됐으니 저한테 일일이 얘기는 안 했지만 수도 없이 미친년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젊어서 혼자 되신 우리 어머니 입장에서도 금쪽같은 내 새끼가 세상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웠을 것은 분명합니다. 양쪽 집에서의 결혼 반대는 제 여자친구와 저를 참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마음 여린 제 여자친구는 한동안 저만 만나면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결혼이라는 걸 했고 이제 거의 30년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21년 동안 만만치 않은 성격의 홀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던 바보 같은 여자친구, 아니 제 아내의 지나치리만큼 긍정적인 성격에 저도 많이 동화돼 이제는 아내와 저는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자기랑 결혼할 거야!” 참 고마운 말입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집안 일 보다는 회사 일, 바깥 일에 더 목숨을(?) 걸었던 저 때문에 참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그녀는 바보인지 천사인지 또 다시 저와 결혼을 하겠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이 그 바보 천사아내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그 바보, 아니 천사를 위해 뭔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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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