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꿈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저의 ‘장래희망’은 정치가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대학은 정치외교학과로 가겠다고 확고한 목표를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뭐 이런 쪽은 아니었고, 행정고시를 생각했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행정부의 ‘좀 높은’ 공무원 정도였을 겁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대통령도
살짝 마음에 담아뒀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건 뭐 하러 새로 짓는대? 피 같은 국민 세금을 왜 그런
데다 써? 이제 싸움판 벌이기엔 넓어서 좋겠네!” 고등학교
시절,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이 완공돼가면서 제가 푸념처럼 내뱉었던 이야기입니다. 만날 소리치고 멱살잡고 싸우며 툭하면 국회의사당에 자리
깔고 눕는 국회의원들 모습이 어린 나이에도 참 보기에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지난 2월 25일 밤, MBC 뉴스데스크를 보다가 이른바 ‘MB악법’으로 일컬어지는 미디어 관련법을 한나라당이 문방위에서 ‘기습 상정’하는 현장을 만났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문득 누군가가 “국회라는 곳은 참… 인간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사람을 버려놓는 곳인
것 같아” 라며 탄식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시절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한 민주인사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크게 반기며 기뻐했습니다. 그분은 기자들을 만나면 항상 자신의 지역구 포장마차에서 민주주의를
논하고 민생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기자들 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강남의 고급 룸살롱을 즐겨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우리는 가슴이 무너지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떨쳤던 어떤 국회의원은 폭탄주에 만취해 국정감사장에서
해당 장관에게 90도로 큰절을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치라는 게 워낙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키는 복잡한 구조라서 저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겠지만 이번의 ‘기습 상정’을 보면서
참 많이 화나고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요 며칠,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호주에 머물렀습니다. 그분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1991년 12월, 그분이 현대건설 회장에서 정치가로 말을 갈아탈 때 단독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 회장께서는 1964년,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으로 6·3시위를 주도하셨습니다. 그랬던 분이 독재정권에 뿌리를 둔 채 ‘3당 야합’으로 이뤄진 민자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신다는 건 좀 낯설어 보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날의 인터뷰에서 그분은 ‘그 안에 들어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2시간여 동안 가졌던 그분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왠지 개운한 기분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는
시점에 미디어 관련법 기습 상정이 이뤄졌고, 그로부터 며칠 후 그분이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주시드니총영사관에서 4일 오후 마련한 동포간담회도, Nathan Rees NSW주 수상이 그날 저녁 준비한 디너파티도 저는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왠지 그 분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분은 취임 당시 스스로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 했습니다. 고민도 많고 할 일도 많겠지만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인 국민들의 마음을 더 늦기 전에
올바로 헤아려주기를 기대해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