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8582022-07-23 22:12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세계적인 수재들만 허락한다는 하버드대그 만만찮은 집단에서도 그는 상위 3%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이스쿨 시절 6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닌 시드니 명문 바커칼리지를 수석 졸업한 그는 세계학생토론대회에 호주 대표로 출전, 당당히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는 지난 1월 세계대학생토론대회 우승컵을 하버드대에 안겨줬습니다. 하버드대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지금 호주 디베이팅 대표팀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고 하버드대 졸업 후에는 또 다시 장학생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더 깊고 더 넓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랑거리가 될 만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들 이야기에 아주 열심이면서도 나에게 이렇게 잘난 아들이 있다는 표시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가끔씩은 이야기 도중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들곤 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인 듯싶습니다. 자타공인 자랑스런 아들을 둔 그분과는 어쩌다 보니 어려운(?) 친구 사이가 됐고 가끔씩 사적인 만남의 자리를 갖습니다. 항상 아들 보현이 얘기에 열심인, 그러나 아들 자랑이 지나치지 않은 서원교 원장요즘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며칠 전 저녁시간,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내가 그날은 약밥을 만들다가 흑설탕이 필요하다고 해 갑자기 차를 몰고 식품점엘 가게 됐습니다. ‘나가는 길에 이든이한테 빵 몇 개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밤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예고 없이 딸아이네 현관 인터폰을 눌렀습니다. 딸아이 부부가 저를 반갑게 맞았고 저는 문밖에서 빵 몇 개와 아이스 콘 두 개가 든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서려 했습니다.

 

그런데거실 펜스 안에서 현관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쳐다보던 에이든을 제 아빠가 밖으로 내놓자 이 녀석이 빛의(?) 속도로 현관으로 내닫기 시작했습니다. 뒤뚱뒤뚱 두 팔을 휘저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녀석이 행여라도 넘어질까 저도 모르게 신발도 신은 채 현관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녀석은 저의 품에 와락 안겼고 우리의 뜨거운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습니다. 에이든을 높이 안아 올려 뺨에 뽀뽀를 한번 쪽 해주고는 이든아, 목요일에 보자하며 돌아섰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위태위태해 보였지만 씩씩하게 뛰어오던 녀석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녀석이 달려오던 복도의 길이가 100미터쯤 돼 보였던 건 왜였을까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저 멀리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항상 연구에 몰두하고 가끔은 비즈니스 때문에 집에는 못 들어오거나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던 아버지가 그날은 해가 저물기도 전에 퇴근을 한 겁니다.

 

집 앞에서 놀다가 아버지를 발견한 꼬마는 전속력으로 아버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본 아버지는 아들이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정신 없이 언덕길을 뛰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품에 안긴 꼬마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쉴새 없이 재잘재잘대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하던 그 꼬마가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를 넘어서 지금은 한 아이의 삼촌 같은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자식과 부모는 서로의 거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커서도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부모가 남한테 사기나 치고 못된 짓을 하는 집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식들도 부모의 그런 모습을 닮게 됩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이 Father’s Day입니다.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잠시 생각에 잠겨봅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