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껄·껄 하지 않으려면… 방안으로 들어서자 노트북 한 대가 보입니다. 뭐지? 의아한 마음으로 엔터키를 치자 모니터에 민율이의 모습이 뜹니다. 1년 전 첫 여행지에서 ‘나쁜
집이 걸렸다’며 울고 있는 다섯 살짜리 민율이의 모습에서부터 그 동안 있었던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같은 시간, 다른 아빠들도 모두
각자의 방에서 지난 1년 혹은 2년 동안 가졌던 아이들과의
추억에 젖어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마지막 방송을 탄 MBC TV 일밤
‘아빠! 어디가?’의
끝부분입니다. 이어 화면에 ‘여행을 통해 내
아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나요?’라는 돌발 질문이 뜹니다. 아빠들은
Yes 또는 No 중에 하나를 누르게 돼 있는데 민율이 아빠
김성주는 Yes를 눌렀습니다. 다시 ‘여행을 통해 나는 아빠로서 많이 성장하였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Yes를 입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나는 아이에게
몇 점짜리 아빠일 것 같나요?’에 대해서는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80점을 써넣습니다. 점수 입력이 끝나자 화면에서는 선물상자가 나타나고 그 속에서 민율이가 나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쓴 ‘아빠한테 쓰는 편지’를 읽기
시작합니다. “아빠, 같이 다녀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저에게 가장 멋있는 사람이에요. 저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빠, 사랑해요. 엄마한테는 비밀인데요 예전에는 엄마가 좋았는데 지금은
아빠가 더 좋아요. 사랑해요. 아빠는 백 점이에요.” 화면을 응시하던 김성주의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고맙다, 민율아”를
나지막이 되뇌며…. 일곱 살짜리 어리디 어린 아들에게서 폭풍 같은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의 눈물은 한참 동안 계속됐습니다. 병원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굉장히 어린아이가 되셨어요. 되게
엄하고 무서워서 ‘왜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빠들처럼 자상하지 못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 이렇게 했었나? 나는
아버지한테 얼마나 위로가 됐을까? 우리 아버지는 나 때문에 힘이 좀 되셨나 모르겠네”라며 연신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다른 방에 있던 다섯 아빠들도 모두 비슷한 감정과 상황 속에 있었고 2년 동안 아이들과 아빠의 여행과 사랑을 그린 ‘아빠! 어디가?’는 그렇게 가슴 뭉클한 무엇인가를 남겨주며 막을 내렸습니다. “죽을 때 ‘껄껄껄’ 하며 죽지 말아야 해요.” 오래 전 한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학교 다닐 때 열심히 공부할 껄, 젊었을 때 죽기살기로 일할 껄, 부모님께 좀더 잘해드리고 효도할 껄,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더 좋은
남편 자상한 아빠가 돼줄 껄, 젊었을 때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닐 껄…. 이 밖에도 우리에게는 수도 없이 많은 껄껄껄의 위험요소들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가족보다는 일과
회사, 동료 선후배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게 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껄껄껄로 남습니다. 할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아들녀석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실감시키며 아직도 찌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저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껄껄껄입니다.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 잘하고 착한 ‘범생이’보다는 놀기도 잘 하고 운동도 잘하는 쾌활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게 또 하나의 껄껄껄에서 비롯된 작은 소망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2015년, 오늘을 사는 시점에서 또 다른 ‘껄껄껄’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정말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