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씨 덕분에… “김 사장님, 이민생활이라는
게… 초반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놀러다니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회를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나중에 자리 잡으면 놀러가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고 지금 이래저래
정신 없으시겠지만 식구들이랑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니세요.” 10년 전, 시드니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주변에서 이런 얘기들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그 조언에 따라 우리 가족은 일일관광을 이용해
포트스테판, 울릉공·키야마, 블루마운틴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크루즈 위에서 돌고래도 보고 아나베이에서 조개도 잡고 사막에서 모래썰매도 탔습니다. 그 유명한 블로우홀도
보고 세자매봉도 만나봤습니다. 본다이비치, 갭팍,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 달링하버
등도 갔고 록데일, 크로눌라 등에 가서 바다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가끔씩은
울릉공까지 가서 소라도 잡고 성게도 잡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어느덧 시드니에서의 10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오페라하우스에 가봤던 횟수는 아무리 열심히 꼽아봐도 열 손가락을 다 못 채우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오후, 모처럼만에
아니, 처음으로 마감을 땡땡이(?) 치고 일탈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날 저녁 오페라하우스에서 조수미씨 콘서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저는 콘서트가 있기 세 시간 전쯤 서큘러키에 도착, 차를 오페라하우스에 넣고는 모처럼의 시티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비릿하면서도
상큼한 바다 내음과 기분 좋은 바람을 안고 로열 보타닉 가든을 거니는 동안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제 손을 놓을 줄 몰랐습니다. 드넓은 잔디 위에 누워 자연을 즐기는 사람, 다정히 붙어 앉아 떨어질줄 모르는 연인들의 모습도 예쁘게 다가왔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어폰을 꽂고 조깅하는 그곳 사람들의 모습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오페라하우스 옆,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도 새로웠고 1시간 40여분 동안 관중들을
쥐락펴락한 조수미씨도 커다란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자리와는 그닥 친하지 않은 저였지만 때로는
카리스마 있고 도도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무대를 이끌어가는
조수미씨는 그 명성에 걸맞게 멋진 모습을 선사해줬습니다. 콘서트가 끝나고는 인쇄소로 전송된 PDF
파일을 살펴보고 리포트를 챙기기 위해 서둘러 텅 빈 회사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난 목요일은 오랜만에 갖는 기분 좋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코리아 타운> 가족들에게는
목요일 마감시간에 조수미 콘서트에 가는 미안함을 일주일 전 회식으로 대신했고, 마감에 대한 책임은 딸아이에게
맡겼습니다. 살짝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난 주 <코리아 타운>도 별 문제 없이 잘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시드니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타성에 젖어서, 또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지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루 세 끼 한국 음식을 먹고 거의 하루 종일을 한국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가끔은 여기가 시드니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습니다. 거리에 있는 표지판들도 명동, 압구정동, 강남역, 시청앞… 뭐 이런 식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처럼 가진 지난 주 목요일의 문화사치와 일탈은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맨날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교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들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갈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오페라하우스가 됐든 어디가 됐든 일부러라도 틀을 벗어난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봤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