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김 사장님이 <코리아 타운> 맡으신 지 한 10년 됐죠?” “아닙니다. 이제 만 6년 돼갑니다.” “아, 그래요?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네요. 그 짧은 기간 동안 김 사장님이 <코리아 타운>을 아주 훌륭하게 자리매김 해놓으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얼마 전, 한 지인의 손녀 돌잔치에서
저와 마주 앉았던 분과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김 사장님, 호주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이제 곧 10년 됩니다.” “10년이라… 정말 빨리 자리 잡으셨습니다. 이민생활 10년 만에 <코리아
타운> 같은 좋은 사업체를 갖고 계시니… 김 사장님은
정말 빨리 성공하신 겁니다. 이제 <코리아 타운>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언론매체가 된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지금도 한 주
한 주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입니다. 2001년 9월 11일, 이른바 911 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삭 주저앉자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항공기 탑승예약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9월 12일 시드니 행 비행기를 예약 해놓고 있었던 저는 “죽을 놈은 어떻게든
죽고 살 놈은 어떻게든 산다”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2001년 9월 13일
이른 아침, 저는 시드니공항에 홀로 내렸습니다. 맨땅에 헤딩… 한 교민매체의
‘초청’을 받았으니 시드니에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로만 알고 집 팔아 빚 갚고 남은 돈 2만불을 들고 시작한, 그야말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이민생활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이런저런 마무리 때문에 저보다 50일 늦게 시드니에 온 우리 식구들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들을 모두 받아내야 했습니다. 별다른 걱정 없이 신청했던 457비자가
스폰서회사의 자격미달로 거부 당하기를 두 번, MRT까지 가는 1년 6개월여 동안의 사투(?) 끝에
2003년 3월 26일 마침내 457를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남짓 후인 2005년 8월 11일,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회사 사주의
타계와 복잡한 회사 내부사정 때문에 말로는 다 못할 위기와 곡절 끝에 얻은 소중한 영주권이었습니다. 호주에
온지 3년 11개월 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침 김에 2007년 9월 28일, 호주 시민권까지
받아버렸습니다. 어차피 이 땅에서 살 것, 그렇게 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2005년 10월 1일에는 정말 우연한 기회와 도움으로 <코리아 타운>을 인수했고 <코리아 타운>은 한국에서부터 기자생활을 계속해온 저의 삶에 기름을 붓기에 충분한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 제가
해오던 일을 계속할 수 있기에 참 많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두 가지 명제는 ‘노력’과 ‘기회’입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기회가 올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성공으로 가는 필수요소라는 생각입니다. 돌아오는 화요일, 9월 13일이 제가 호주에 온지 꼭 10년 되는 날입니다. 툭하면 얼굴 보고 건수 만들기 좋아하는 여덟 가족이 내일 저녁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고맙고 기쁜 날, 그 행복과 사랑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