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나만 아니면 돼!” #5962022-07-23 17:50

나만 아니면 돼!”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끼어들 기회를 엿보고 있는 저를 향해 저만치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헤드라이트를 번쩍였습니다.

 

제가 여전히 끼어들지 못하고 있자 그 차는 몇 차례 더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다가 급기야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얼른 들어오라는 싸인을 보냈습니다.

 

소심한 저는 그제서야 끼어들기를 했고 제가 완전히 끼어든 걸 확인한 후에야 그 차를 비롯해 뒤에 서 있던 모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고는 그 차 운전자를 향해 고마움의 표시로 왼손을 들어 보였습니다.

 

200110월의 일이었습니다. 시드니에 오자마자 허겁지겁 운전면허를 따서는 중고 Ford Falcon을 몰고 어리버리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남의 나라에 온지 채 한 달도 안 된 상태인지라 길도 잘 모를뿐더러 오른쪽 왼쪽도 반대여서 늘 헷갈림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날도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생겨 메인 도로로 들어서야 하는데 차가 끊이질 않아 계속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향해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차까지 있으니 더더욱 끼어들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는 서로 끼워주지 않으려고 바짝바짝 밀어붙이고 빵빵거리고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위협을 가하는데 이곳에서는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게 양보의 의미였던 겁니다. 별 건 아니지만 커다란 차이를 주는 교통문화였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전기제품이나 가스제품을 버릴 때는 반드시 간단한 메모를 함께 붙여놓습니다. 그 물건을 가져다 쓸 사람을 위해 이 제품은 특별한 이상이 없으므로 곧장 사용해도 된다라든지 이 제품은 어디가 고장이니 그걸 손봐야 한다는 식의 인포메이션을 주는 거지요.”

 

얼마 전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전기제품의 경우 못쓰는 제품이나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아예 전기코드를 잘라서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런 제품을 잘못 써서 올 수 있는 사고를 고려해서입니다.

 

지난 월요일이 우리 동네에서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 덩치 큰 물건들을 버리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집도 얼마 전에 새로운 것을 사서 몇 년 동안 쓰던 바비큐 그릴을 내놨는데 생각하니 그게 한 쪽에서 가스가 살짝 새는 상태였습니다.

 

한밤중에 얼른 다시 나가 ‘Gas Leaking’이라는 표시와 함께 가스가 새는 쪽을 향해 화살표를 그린 쪽지를 스카치 테잎으로 단단히 붙여놨습니다.

 

조금만 손 보면 쓸 수 있는 물건이었던 터라 그 바비큐 그릴은 아침 일찍 누군가가 가져갔습니다. 밤늦게라도 쪽지를 붙여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져다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들고 가서 쓰는 이곳 사람들의 절약 정신과 그것을 배려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역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크게 와 닿는 대목입니다.

 

노스 쪽으로 올라가 길을 물으면 그곳 사람들은 아예 손을 잡고 찾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직 저는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그만큼 호주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뜻일 겁니다.

 

나만 아니면 돼!” 하는 마음가짐과 아주 작은 일에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져오는 문화적 차이는 참 많이 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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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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