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1997년 개봉된 한국영화 ‘접속’에서 나온 명대사입니다. 한석규, 전도연이
열연한 이 영화는 그 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전도연에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겨줬습니다. “선생님은 남자가 뭐 그래요? 아니, 남자가 싫으면 싫다고 딱 부러지게 얘기해야지. 연락도 없이 흐지부지
그게 뭐예요?” 대학 때 제가 영어교사를 맡은 야학의 학생이었던 은주가 저를 살짝 흘겨보며 밉지 않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이 더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우리 언니는 이제나저제나 선생님한테서 연락오기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마무리를 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아? 영은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연락도 못했네요. 시간 괜찮으면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좀 볼래요?” 대학시절 활달한 성격의 은주 녀석 소개로 사촌 언니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축제 때 파트너로 함께 하고 나서는 한 달 넘게 서로 별다른 연락도 없이 그냥 저냥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는 극성스러운 은주 녀석의 중재로(?) 어느 토요일 오후 명동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은 만나서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저녁이나 함께 하기로 했던
거였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함께
해서 좋았다. 앞으로 좋은 남자친구 만나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이 맞는 걸까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났던
우리가 오히려 그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귀게 됐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이제는
결혼 30년을 바라보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더 웃긴 건 “언니는 왜 그래? 선생님이 연락 안 하면 언니라도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흐지부지 끝내고 싶어? 선생님은 언니가 마음에 드는데 언니한테서 연락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정말 ‘여우 같은’ 전략이었습니다. 양쪽에 서로 다른 말을 흘려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하려 했던 거였습니다. 아내도 당시에는 저한테 별로 호감을 못 느꼈던 터에 제가
연락을 하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다시 만난 우리는 그날 ‘앙큼한
은주의 계략’을 알아채고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지난 연말 한국에 갔을 때,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던 은주 그 녀석도 이제는 귀여운 아들을 하나 둔 40대 아줌마가 돼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그때 얘기를 하면서 호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래도 언니랑
형부는 나 때문에 잘 만났지 뭐! 안 그래?” 다음 주 토요일, 딸아이가 결혼합니다. 남자친구가 이곳에 와 있다가 1년 만에 호주로 돌아갈 무렵부터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이후 그 친구가 다시 시드니로 오기까지 3년 여 동안을 국제전화며 문자며 이메일이며
메신저며 이런 것들을 총동원해 사랑을 다져온 참 ‘별난 커플’입니다. 두 아이가 만든 청첩장에는 “내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났습니다”라고 써 있습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처럼 좋은 인연이기를, 그리고
정말 ‘내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으로 영원히 남기를
기원합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