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8번 “세월이 약이겠지요’ 하다가 ‘쨍! 하고 해뜰날’을 불렀더만 곧 바로 쨍! 하고 해가 떠불더만요.” 얼마 전 시드니에서 공연을 가진 송대관씨가
무대 위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가수 데뷔 후 10년 가까운 세월을 무명으로 지내던 그가 1975년
‘세월이 약이겠지요’에 이어 내놓은 ‘해뜰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쨍! 하고 해뜰날’을 외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렇게 ‘해뜰날’은 국민가요가 됐고, 노래 제목 그대로 송대관씨에게 쨍! 하고 해가 뜨는 기쁨을 안겨줬습니다. 역시 같은 날 시드니에서 공연을 가진 주현미씨는 자신의 히트곡 중 ‘울면서 후회하네’는 웬만해서는 부르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왠지 그 노래를 부르면 자신에게 정말 울면서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묘하게도 자신이 부른 노래대로 운명이 결정지어진 가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밝은 노래, 신나는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는 가라지를 개조해 만든 우리만의 노래방이 있습니다. 호주 금영노래방에서 구입한 노래방기기에 여기저기 번쩍거리는 오색 조명들까지 갖춰놔서 밖에서 노는 것만큼 빵빵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분위기가 납니다. 음주운전 걱정 없이 집에서 술 한 잔 기분 좋게 걸치고 편안하게 놀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제가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18번
격인 노래는 ‘무인도’입니다. 원래는 김추자씨가 불렀는데 정훈희씨가 1975년 칠레국제가요제에
참가해서 상을 받으면서 더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이 부분이 특히 웅장하고 신나는 노래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인도’라는 제목에서나 가사 중 일부에서 외로움 또는 고독이 묻어 나옵니다. “파도여
슬퍼 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무인도’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산울림 출신 김창완씨가 부른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입니다. “생각나면 들러봐요. 조그만 길
모퉁이 찻집.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옛 향기겠지요…” 역시
이 부분이 경쾌하고 신나지만 이 노래에도 알게 모르게 외로움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은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이왕이면 기분 좋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건 맞는데 오랜 세월 함께 해온 18번을 확 바꿔버릴 만한 좋은 노래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적절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노래하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