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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있는 거니까… #7912022-07-23 21:31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있는 거니까…

 

가끔씩은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서 우아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데 그 놈의 원수 같은 영어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드니에 한국영화가 들어오면 빼놓지 않고 봅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들어오고 우리도 비슷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드물게는 저런 영화가 어떻게 그 많은 관객들을 동원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분들도 함께 즐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제 글을 통해서도 열심히 영화 이야기를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냥 조용히넘어갑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 아내와 저는 또 한편의 한국영화를 봤습니다. 한국에서 흥행 중인 장수상회라는 영화입니다. 아직 시드니에서는 개봉 전인데 배급사에서 미리 언론사 시사회를 마련한 겁니다.

 

틈만 나면 버럭,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까칠한 노신사 성칠 (박근형 분). 장수마트를 지켜온 오랜 모범직원인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넘쳐도 배려심, 다정함 따윈 잊은 지 오래이다. 그런 성칠의 앞집으로 이사온 고운 외모의 금님 (윤여정 분). 퉁명스러운 공세에도 언제나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소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성칠은 당혹스러워하고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금님은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장수상회는 영화소개만을 놓고 볼 때는 70대 노인들의 서툰(?) 사랑 이야기를 그린, 그저 평범하고 밋밋한 영화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영화가 시작되고 괴팍한 성격의 성칠이 금님을 향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웃음을 뽑아냅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반전이 시작되고 이때부터는 객석에서도 웃음소리보다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훨씬 잦아집니다.

 

영화 이야기를 자세히 하면 스포일링이 될 수 있어 더 이상의 언급은 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수상회가 70대 노인들의 서툰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애부부사랑을 그린 가슴 찡한 감동을 주는 좋은 영화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강제규 감독은 모든 세대가 공감하며 웃고 울 수 있는 영화이다. 장수상회를 통해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파도 가족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전해 드리고 싶었다. 분명 이 영화를 통해 얻어가시는 선물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시사회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영화가 끝난 후 가정의 달을 맞아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생각하며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딱 좋은 영화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장면 하나만 담아보겠습니다. 놀이동산 데이트 도중 금님이 화장실에 들어간 동안 앙증맞은 토끼 머리띠를 한 성칠은 금님의 가방을 들고 여자화장실 앞에 서서 노래까지 부릅니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까칠하기로 따지자면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일 수도 있는 성칠이 사랑에 빠져 그런 모습까지 보이게 된 겁니다.

 

명대사도 하나 얻었습니다. 영화 말미에 금님의 손을 꼭 잡은 성칠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있는 거니까.” 연인끼리, 부부끼리 이보다 더 강한 사랑의 약속은 없을 듯싶습니다.

 

장수상회는 14일부터 27일까지 시드니 시티 (George St.)와 버우드 이벤트시네마에서 상영됩니다. 영화홍보 차원이 아니라 부부끼리, 연인끼리, 부모님과 함께, 자녀들과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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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 10 1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