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달린 집

한국 tvN에서 매주 목요일 밤 ‘바퀴 달린 집’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탤런트 성동일, 김희원, 여진구가 고정출연 하며 캠핑카, 엄밀히 말하자면 자동차 뒤에 매달고 다니는 트레일러식 캠핑카로 전국을 돌며 여행을 즐기는 형식입니다.

매회마다 이혜리, 공효진, 이성경 등 여자연예인들이 한 명씩 게스트로 출연해 캠핑의 즐거움과 먹는 기쁨 그리고 힐링의 행복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퀴 달린 집을 끌고 전국을 누비는 그들을 보노라면 ‘우리도 한국 가서 저렇게 살까?’ 하는 충동을 문득문득 느끼게 됩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캠핑카를 이용한 여행이 늘고 있는 건데 가히 캠핑카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호주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캠핑카에 대한 로망과 함께 부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애들한테 들어와 살라고 주고 우리는 캠핑카 하나 사서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렇게 몇 달씩 여행하다가 돌아와 며칠 집에 머물다가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한 지인부부가 가끔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부부는 3년에 걸쳐 캠핑카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같은 일은 나이며 건강, 돈, 시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따르기 때문에 확 달려들기는 녹록지 않겠지만 그에 비해 캠핑카로 도는 호주 국내여행은 훨씬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캠핑카 한 대만 있으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습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펴면 그게 다 우리집이 될 것이고 어디에서든 낚싯대를 던져 넣으면 어렵지 않게 일용할 양식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다가 캠핑카를 갖고 오는 사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캠핑카로 불리는 캠퍼밴 (Campervan)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좋은 건 30만불? 생각보다 훨씬 비싼 가격 때문입니다. 최근 현대차에서 포레스트 (Porest)라는 이름의 캠핑카를 출시해 눈이 가기는 하는데 가장 싼 엔트리가 4899만원이고 스탠다드는 6430만원, 딜럭스형은 7706만원이랍니다. 이것도 이런저런 옵션이 더해지면 가격이 높아질 것이고 호주에 들어오면 그보다 훨씬 비싼 금액이 될 것입니다.

은퇴하고 나면 아내와 둘이 호주 전역 그리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는 것… 오래 전부터 제 가슴 깊이 품어져 있는, 작지만 큰 꿈입니다. 하지만 하수상한 세월이 계속되고 있고 아직은 회사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게 무리일 듯싶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되도록 빨리 그 꿈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해야 하는 것이고 저 같은 경우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건 앞으로 10년 정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팔자 좋은 소리한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집이고 회사고 다 훌훌 털어내고 캠핑카 한 대 사서 호주 전국을 누비고 다닐까?’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새삼스런 얘기이긴 하지만,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늙수그레한 저한테 속아 고난의 길을 자처한 아내는 참 많이 답답했을 겁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뛰어다닐 나이 때부터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야 했고 21년 동안 꼼짝없이 홀시어머니를 모셔야 했으니…. 철이 없어 몰랐던 시절에야 그랬다 치더라도 자유로운 몸이 된 지금이라도 아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라도 실컷 시켜주고 싶은데 캠핑카 하나 멋지게 살 여유가 안 됩니다.

지난주 모처럼 지인들과 함께 다녀온 웨딩케익록 (Wedding Cake Rock) 여행에서 아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장 캠핑카를 사지는 못해도 한 달, 아니 2주라도 캠핑카를 빌려 여행하는 기회를 조심스레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내와 처음 만난 지 38년 되는 날입니다. 캠핑카 여행에 앞서 아내가 좋아하는 저비스 베이 2박 3일 여행이라도 얼른 준비해야 아내에게 조금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

 

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43강 네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나는 자고 있는 중이었어
Next article바램